난외의 여백
불멸하는 光源에게
유일의 戀人으로부터
1. 복귀
3분 57초 뒤, 목적지 '지구'에 착륙합니다.
기체 이상 없음. 착륙지 확보 완료.
익숙한 기계음이 선체에 퍼집니다.
이제 3분 57초 뒤면 이 목소리와도 이별이겠군요.
구 년 동안 함께한 만큼 다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도 그럴 게, 지난 구 년 간 이 선체에는 박성태 당신뿐이었고,
사람-혹은 그 비슷한- 목소리라고는,
탐사 시작 첫 삼 년 동안 지구로부터 오던 음성 편지들과 통신 연락들을 제외하고,
바로 이 노바 09호의 안내 음성뿐이었으니까요.
자, 이제 착륙 준비음이 들립니다.
10, 9, 8, 7.......
2029년에 지구를 떠난 지 자그마치 구 년 만입니다.
드디어 그 장대한 임무가 끝나는 겁니다.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
...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구 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을 청명에게로.
6, 5, 4.......
아, 드디어 지구가 보입니다.
방사능 재가 흩뿌려지고 전쟁의 불씨가 모든 나라를 집어삼키는 혼란의 시대,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 다른 대지로 눈을 돌렸었죠.
한국이 선택했던 곳은 눈부신 이웃별, 찬란한 독수리가 나는 그곳,
알타이르.
당신은 광활한 우주를 다니며 인류를 위한 새로운 행성의 가능성을 탐색했죠.
하지만 당신이 깨달은 건 이보다 뛰어나고 완전하며 아름다운 행성은 없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 땅에 다시 안길 시간입니다.
3, 2, 1.......
Zero.
억겁과도 같은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온몸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선체가 땅에 착륙합니다.
엄청난 진동이 당신의 몸을 울립니다.
하지만 몸이 떨리는 건 비단 선체의 진동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설렘, 흥분, 꿈에도 그리워하던 것을 목전에 두었을 때의 그 긴장감.
출입구를 개방합니다.
열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우주선의 출입문이 열립니다.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박성태 님.
박성태는 걸음을 내딛습니다.
한 발, 한 발. 조종실을 벗어나 통로를 지나 저 끝에 환한 빛을 담고 있는 출입구까지.
안녕, 노바 09. 안녕, 프로젝트 알타이르.
그리고 다시금 안녕, 나의 지구.
따사로운 햇빛에 손차양을 드리운 채 박성태는 선체에서부터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갑니다.
아, 눈앞에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
당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도,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군요.
다만 모두가 열렬하게 당신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돌아온 겁니다. 돌아왔어요, 당신.
이곳은 달과, 별과, 해가 뜨는 곳. 당신의 빛나는 지구.
오랜만에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가 먹먹해집니다.
이제 계단을 디디고 지구의 땅을 밟기까지 단 한 걸음.
숨을 가다듬고 우주복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낀 채 발을 내리려는 그 순간,
기자:박성태 씨! 사십 년 만에 지구에 복귀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얀 가운들 사이에서 카메라를 든 어떤 남자가 불쑥 튀어나와 소리를 지릅니다.
순식간에 이목이 쏠리고 다른 사람들은 매우 당황한 티를 내면서 경비를 부릅니다.
금세 남자는 경비원들에게 제압되어 끌려 나갑니다.
아무래도 몰래 잠입한 기자인 것 같아요.
예전에 당신의 동료 하나가 착륙하자마자 몰려드는 기자들 때문에 그만 실신을 한 뒤로는 모든 착륙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데 말이죠.
....... 잠시만. 사십 년?
방금 저 남자가 사십 년이라고 했나요?
그럴 리가요. 당신은 구 년 동안 우주를 돌아다녔고, 지금은 2038년이어야 합니다.
노바 09호의 달력에는 분명하게 2038년 X월 X일이라고 써 있었는 걸요.
당신이 구 년 동안 쓴 일기가 이를 방증합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와 자신을 반겨야 할 당신의 동료들은 다 어디를 갔죠?
… 연인이자 동료였던 청명은 또 어디에 갔고요.
이상합니다. 모두 낯선 얼굴뿐이에요.
박성태의 눈에는 그제야 풍경들이 들어옵니다.
끌려 나가는 기자가 들고 있는, 처음 보는 모델의 카메라.
연구원들의 어딘지 조금씩 어색한 머리 모양들.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건물들.
"2069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성태 선배님."
풍경들을 채 다 훑기도 전에 계단 바로 옆에 서있던 사람이 화환을 박성태의 목에 걸어 줍니다.
심리학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가르고 그 사람을 들여다봅니다.
울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합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끝낸 박성태의 착륙 장면이 그리 감동이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사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에요.
방금 이 사람이 이상한 말을 했잖아요. 2069년에 온 걸 환영한다고요.
복귀 기념 깜짝 파티인가요?
아하, 모두 짜고쳐서 당신을 놀라게 할 속셈인가 봐요.
다들 이런 때 보면 짖궂어요.
그런데, 당신의 연인, 청명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요?
"사랑해, 언제나 그럴 거야."
당신이 얼마나 먼 곳으로 떠났든, 그 마지막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였든,
이제는 개의치 않고 당신의 복귀를 누구보다 반겨줘야만 하는 당신의 연인.
우주 한가운데 홀로 그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애정의 대상.
하지만 아무리 얼굴들을 살펴보아도 없습니다.
갈 곳 잃은 박성태의 시선들 사이로 모든 얼굴들이 혼란스럽게 휙휙 스쳐가고,
예전의 그 동료처럼 꼭 정신을 잃을 것 같은 현기증이 돌던 그 순간,

청명을 꼭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띠는 남자가 들어옵니다.
동시에 박성태의 발이 드디어 땅에 닿습니다.
온전한 중력입니다.
아, 그래요.
그제야 당신은 막연하게, 아니, 명백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박성태의 시간과 달리 지구에서는 정말로 사십 년이 흘렀다는 것과,

그 여백 동안 당신의 연인, 청명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SANc 2/1d3+1

기준치: | 63/31/12 |
굴림: | 1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 후로 기억나는 것은 억겁 같은 암전입니다.
2. 지구 2069
깜빡, 깜빡.
눈꺼풀을 연신 감았다가 뜨면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긴 어디죠?
삐이, 삐이. 귀에 규칙적으로 바이탈 사인음이 들립니다.
구 년 만의 탐사 종료.
그러나 사십 년이 흘러 버린 지구.
마지막 기억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벌떡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려던 찰나,

갑자기 쓰러지셔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짙은 그림자처럼 어두운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과,
그럼에도 애정을 갖고 부드럽게 말려 있는 입매.
아까 보았던 그 남자입니다.
이름이 예견우라고 했었죠.
견우의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옵니다.
2069년의 지구.
숫자만으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병실인 것 같은 이곳에 있는 의료 기계들조차 당신이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네요.
삐이, 삐이. 규칙적인 바이탈 사인음이 들려 옵니다.
궁금한 것들을 자유롭게 예견우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견우는 말을 연신 가다듬다 조심스레,) 지금은 못 보실 거예요.


일단 아버지는 교수였어요. 아시잖아요, 함께 하셨을 테니까. 그러고, 음...
돌아가셨어요. 사고로.

........제발요.
그냥, 다른 이야기 해주세요. 견우씨에 관한거나.. 정말 아무말이요.

아까는 소개가 어설펐죠. 다시 소개하자면, 저는 센터 소속 연구원이에요.
스물다섯 살이고요. 우연찮게도 당신이 떠나던 그 나이와 같네요.
어, ... 또 뭘 말해야 할까... 죄송해요. 저도 지금 생각이 많아서, 그게.
뭐라도 물어보시면 대답해드릴게요.
아무거나 물어봐도 괜찮아요.

헛웃음조차 나질 않습니다.
꼭 어릴 적 보던 만화나 SF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나의 시간은 구 년이 흘렀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시간은 사십 년이 흘렀다...
꼭 서른한 해만큼의 여백.
보통의 사람이라면 응당 단번에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눈앞의 사람은 그런 당신을 보면서 잠시 머뭇거립니다.
심리학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예견우는 당신의 사정에 유감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러나 이를 섣불리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는군요.
목에 화환을 걸어 주던 사람처럼 비극적인 무언가를 봤다는 충격이나 동정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에 대한 어떤 오랜 애정 같은 것이 담긴 듯한.......


맞아요,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당신이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됐길래 지구에서는 사십 년이 흘러 버렸으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청명은 억겁을 기다리겠다는 맹세를 저버린 것일까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동시에 또 갈급합니다.
견우를 따라서 회복실을 나서 긴 통로를 거치면 천장이 꼭 하늘처럼 높게 자리잡은 거대한 중앙 관제 센터가 보입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풍경이 박성태가 기억하는 것과 너무 달라져 버렸거든요.
컴퓨터를 비롯한 많은 기계와 장치들은 겨우 그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정도이고 아예 처음 보는 듯한 기계들도 널려 있습니다.
꼭 하나의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입니다.
당신의 발은 지구에 있는데, 오히려 우주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더 길을 잃은 듯한.......

그만 아찔해져 다시 현기증이 돌려는 찰나, 팔목에 온기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당신을 안내하던 견우군요.
당신의 팔목을 잠시 쥐었던 예견우는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떼더니 시선을 돌려 가볍게 눈짓을 합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 보이는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프로젝트 타임라인과 그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윤곽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견우에게 읽은 내용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버지가 왜 당신에게 매달리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요. 하여간...
그러다가 사고가 나서. 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성태 씨.
아버지는 이제 안 계셔요.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칩니다.
지능 판정

기준치: | 55/27/11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문득 머리에 스칩니다.
2032년 X월 X일.
이날은 박성태가 후보 행성들 중 가장 마지막 행성인 AL-0922에 들렀던 날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당신의 시간선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니... 거의 확실한 것 같아요.

예견우는 당신이 받았을 충격을 걱정하는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당신의 안색을 살피고 의사를 우선시하는 걸 보면요.
센터 측에서는 당신과 예견우 사이의 사정 같은 것은 모를 테니 적절한 사람을 붙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게, 견우를 제외하고 센터 내를 돌아다니는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당신을...
듣기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남자:저 사람 맞지?
그, 여백인가 뭔가...
여자:대박. 진짜 신기하다. 진짜 사진이랑 똑같아.
하나도 안 늙었네...
남자:야, 진짜 부럽다.
나도 우주선에나 탈까?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보는 양 수군거리고 있으니까요.
그런 시선들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예견우가 그런 성태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다시 말을 꺼냅니다.

아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 걱정 마세요.

중앙 관제 센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에 내리자 복도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가운데 복도로 이어지는 곳에는 <연구실 001~010>이라고 붙어 있는 팻말이, 그 오른쪽 복도 입구에는 <난외의 여백 전시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다만, 왼쪽 복도는 팻말이 붙어 있지 않고 반대편 끝에 있는 하나의 출입문에 무어라 쓰여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보니 출입문에는 <박성태 프로젝트> 라고 쓰여 있습니다.
관찰한 결과에 대해서 예견우에게 자유롭게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배정되어 있는 프로젝트인데, 짐작하셨겠지만 성태 씨의 여정에서 시간이 뒤틀렸잖아요.
노바 09호의 궤도를 다시 탐색해서 시간선이 왜 뒤틀렸는지 파악하는 임무를 맡은 프로젝트예요.
그걸 수행하는 곳이 저기고.
지금으로선 더 자세한 걸 말씀 드릴 수는 없네요. 죄송해요.
예견우를 따라서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관제 센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전부 당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당신의 생애 연혁이 가득 적힌 벽면부터, 옷들을 포함한 여러 물건들,
가족들과 친구들이 당신을 회고하는 인터뷰 영상들까지.
무엇부터 자세히 살펴볼까요?

스스로의 연혁을 읽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하지만 말미를 제외하고선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라 그다지 어려울 건 없네요.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은 익숙하다 못해서 사무치게 그리울 지경입니다.
노바 09호 발사 전에 지구에서 박성태가 입었던 옷들과 썼던 책상, 필기구, 비행 훈련 일지 등.
당신과 관련된 주요 물건들은 모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물건이 있습니다.
보름달 모양을 한 목걸이입니다.
당신이 탐사가 끝나면 자신을 기다렸을 청명을 위해 사 두었던 물건입니다.
... 그리고 이제는 그 주인이 없어진 물건이기도 합니다.


이쪽도 보실래요? 이건 회고 인터뷰예요.

가족부터 친구들까지 차례대로 박성태를 회고하는 영상입니다.
형은 성태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아, 저건 누구인가요?
함께 석사 과정을 밟았던 정인이네요.
정인은 어느덧 나이 지긋한 대학 교수가 되어 당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모두 한눈에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들어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이 끝나자 잠시 나오는 검은 화면에 박성태의 얼굴이 비칩니다.
서른넷의 청년.
도저히 방금 전 중장년들과 같은 또래라고 보기 어려운 맨질하고 생기 넘치는 얼굴.
이제서야 당신은 새삼 또 실감합니다.
지구에서 부르던 말대로 자신은 '여백' 그 자체가 되었음을.
SANc 1/1d3

박성태
기준치: | 62/31/12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전시관을 다 보고 나면 예견우는 시계를 봅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하네요.
예견우를 따라 센터 내에 마련되어 있는 숙소로 가면 침대와 책상, 소파, TV 등이 마련되어 있는 아늑한 공간에 도착합니다.
예견우는 곧 저녁 식사가 도착할 테니 먹고 단독으로 숙소 밖을 나가는 행위 빼고는 자유롭게 쉬다가 취침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무전기 하나를 건네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를 통해 연락하면 된다는 말도 잊지 않네요.
견우는 바쁜 일이 있는 듯 무슨 연락을 받고 방을 나갑니다.
방 안에 있는 TV는 물론이고, 가구들까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일상의 공간이라 더욱 시간차로 인한 이질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물며 방 벽지 색까지도요.
저녁이 오기 전에 간단하게 방 안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부터 살필까요?

침대는 시대를 거듭해도 여전히... 폭신폭신하고 좋습니다.
숙소의 침대 치곤 굉장히 질이 좋은 편이네요.
서서 방방 뛰면 기분이 좋아질 것도 같지만...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곳을 볼까요?

책상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합니다.
그렇지만 책상에 연결된 책장에는 책이 제법 꽂혀 있네요.
천체 물리학에 대한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타임 패러독스>
책을 펼쳐서 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관련된 여러 역설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과거에는 내가 둘이 존재하게 된다는 역설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다른 곳을 살필 수 있습니다.

가죽 소파는 사용감이 덜합니다. 아무래도 사놓고 거의 쓰지 않은 것 같아요.
소파에 앉으면 TV가 정면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TV를 살펴볼까요?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있었던 비행기 사고에 대해 다루고 있군요.
생존자는 겨우 한 명. 어린 아이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것 같아요.
비행기의 엔진 결함이 원인이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한참 집중하고 있던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저녁 식사가 도착합니다.
반찬이 여러 가지 놓인 한정식입니다.
다행히 음식 메뉴는 익숙하군요.
별세계 음식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레토르트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 역시 구 년 만입니다.
감회가 새로울지도 모르겠어요.
식사까지 끝나고 나면, 긴 하루가 끝납니다.
잠에 들기 전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나요?
또, 어떤 감정들을 느끼고 있나요?
뭐가 되었든 이제 당신은 지구에 있습니다.
이곳은 달도, 별도, 해도 뜨는 곳.
중력처럼 눈꺼풀을 감고 나면.......
휴식!
20분 뒤 휴식...
3. 사십 년 만의 해후
깜빡, 깜빡. 낯선 천장이 보입니다.
선체 상태를 보고하던 노바 09호의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여기는 2069년의 지구니까요.
아침이 배달되고 식사를 마치면 옆에 두고 잤던 무전기가 보입니다.
이제 오늘은 무얼해야 하는 거죠?
하루가 지났는데도 어쩐지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발은 땅에 붙어 있는데 영영 우주 한가운데를 떠도는 미아가 된 것 같은.......
그때, 문에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문을 열어 주면 예견우는 환하게 웃으면서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더니 잽싸게 문을 닫고 들어와서는,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쉿, 하는 표시와 함께 쪽지를 내밉니다.

예견우는 몰래 땡땡이라도 치는 고등학생처럼 제법 들떠 보입니다.
이런 얼굴을 보면 청명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얼른 나가자는 식으로 가볍게 팔을 흔드네요.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견우가 이렇게 쪽지까지 써 올 정도면 어쩐지 함께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예견우를 따라서 센터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센터를 함께 구경하는 척하면서 쏙 주차장으로 빠져 견우의 차를 타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은밀행동 판정

기준치: | 40/20/8 |
굴림: | 45 |
판정결과: | 실패 |
어색한 당신의 몸짓을 이상하게 여긴 경비가 둘을 저지하려 했지만...
와! 예견우의 임기응변 덕에 무사히 차에 도착했습니다.
조수석에 앉으면 그제서야 차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주차장에 놓여 있는 차들이 전부 낯선 외관들이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역시나 버튼 하나만 꾹 눌러서 시동을 거는 예견우의 모습이 다소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사십 년 동안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했군요.
오로지 당신만 2029년에 둔 채로.

당신이 상념에 잠기는 걸 눈치챘는지 예견우가 너스레를 떨며 조수석에 있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 줍니다.
뭔가 잡동사니가 잔뜩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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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는 어떨까요? 고전적이고.


rolling 1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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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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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거. 야구 모자라도 써보실래요?



나름 그럴 듯하게 변장을 마치고 나면,
목적지에 도착한 듯 차가 멈추더니, 예견우가 활짝 웃으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예견우가 손목을 잡고 이끄는 대로 향하면, 자, 시작입니다!
카페, 영화관, 백화점, 입체게임(?)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어디부터 가볼까요?

예견우가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걸어 도착한 곳은 영어로 ETIAXXX라고 적힌 곳입니다.
뭘 하는 곳인지 채 묻기도 전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건 좋아요. 20년대에도 STARXXXXX는 유행이었죠. 그런데...
진한 커피 향이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것을 보면 분명 카페인 것 같은데….
웬일인지 종업원 한 명 보이지 않고 그저 노래와 왁자한 웃음소리만이 잘게 흩어집니다.


견우는 당신을 키오스크 앞으로 끌고는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잠깐 고민합니다.

성태 씨는 등록이 안 되어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해 봐요. 걱정 마세요!
자 일단, 칩이 없으니 수동 주문을 누르고요... 듣고 계시죠?

당신의 눈앞에 엄청난 선택지가 펼쳐집니다.
이건 마치, 처음으로 서브웨이(이제는 오래된 브랜드가 되어버린)에 갔을 때 느낀 당혹감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도 선택지가 더 많아요. 확실히 많습니다. 원두 볶은 정도부터 골라야 한다니요.
남자:아니, 이거 처음 써 봐요? 30년 산에 살다 오셨어요?
뒤에 서있던 남자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우여곡절 끝에 음료를 주문하고 받아 둘은 테이블에 앉습니다.
견우가 시킨 커피는 우유가 더 많이 들어간 라떼네요. 시럽을 두 번 넣었어요.
예견우는 시킨 음료를 한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자기도 이 상황이 웃긴지 웃음을 터트립니다.

... 아, 근데 자꾸 생각난다. (애써 웃음을 참는 얼굴이죠...)


... 부모님이랑도 이런 적이 잘 없는데.
심리학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언뜻 예견우의 얼굴에 쓸쓸하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감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떤 지독한 외로움 같은.......
자유롭게 RP할 수 있습니다!


방패 들고 나오는 냉동 인간? 아! 캡틴 어쩌구. 딱 당신이랑 비슷해요. (또 슬그머니 놀릴 구석을 찾고 있습니다...)




아! 커피만 다 마시구요. (급히... 남은 커피를 원샷합니다!)


두 사람은 카페를 나와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합니다.
영화관이 굉장히 커졌네요. 예전에는 백화점 한두 층에도 딸려 있던 게 영화관인 것 같은데, 이제는 건물 하나가 통째로 영화관이에요.
하여간, 예견우는 익숙하다는 듯 당신의 팔을 끌고 STR이라고 적힌 영화관 건물로 들어섭니다.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들에는 상영 시간표라는 말이 적혀 있어요.
무엇부터 살펴볼까요?

영화별로 시간표가 어지럽게 지나가고 있어서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습니다만,
가장 가까운 영화로는 <시간 역설>과 <평범한 남고생인 내가 이세계에서는 인류의 희망이 되어버렸습니다만?>이 있습니다.


그게 좀 더... 합리적이게 보이죠?
좋은 선택입니다!
팝콘을 들고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 주변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대부분의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중에 곧 개봉 예정이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은 <난외의 여백>.
당신의 이야기로 영화까지 만들었나 보군요.
심지어 당신과 닮은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있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묘합니다...

이게 그렇게 좋은 결과인진 모르겠지만. 네. 어. 그래요.


두 사람은 함께 <시간 역설>을 관람했습니다.
현실 부적응자에 백수인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인데......
세상에! 오랜만에 지구에 돌아왔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제 잠이라도 설쳤기 때문일까요?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드는 바람에 이후 내용을 놓쳤습니다!
그밖에 기억이 나는 것이라곤 몹시도 큰 스크린과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화질,
그리고 영화 주인공들이 맡는 것과 흡사하게 재현된 여러 향기들뿐입니다.
예견우에게 잠든 이후 내용을 물어봐도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해 주지 않네요.
대신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다시 박성태를 채근합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더 있다면서요.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흐르고, 바깥이 어둑합니다.
견우는 당신을 끌고 또 어디론가 가는데, 이번엔 그 목적지를 가늠할 수가 없어요.
어쩐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예견우를 따라 건물 안쪽으로 발을 들이면 온통 깜깜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견우의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 이름을 불러 봐도, 손을 뻗어 봐도 닿지 않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암흑의 고요한 공간에서 긴장된 스스로의 숨소리만 들리던 그때,
깜깜했던 공간에 찬란하게 별들이 수놓아진 밤하늘이 펼쳐집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구에 도착한 뒤로 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밤에 잠이 들기 전 봤던 밤하늘은 온통 어둡기만 했었죠.
우주에서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천체투영관이야 탐사 전에도 여러 번 봤지만, 이건 어딘지 다릅니다.
실제 밤하늘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듯한.......
오로지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밤하늘.
이곳은 별도, 달도 뜨는 곳.
그 찬란한 별빛들 아래에서 예견우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밉니다.


그 손을 홀린듯이 잡은 뒤, 바닥 한가운데에 예견우의 겉옷을 이부자리 삼아 두 사람은 눕습니다.
서 있을 때와는 다르게 온 시야에 별빛들이 가득찹니다.
그래요.
다른 사정들은 모두 제쳐놓더라도,
결국 당신은 찬란하고 청명한 빛을 사랑한 탓에 우주 비행사가 됐었죠.
한참동안 별빛들을 바라보던 예견우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당신 때문에 예견우가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니?
예견우는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이 차분히 말을 이어갑니다.

나이도, 기억도, 모든 게 희미해요. 아마 일부러 잊으려고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는데... 그걸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유일한 생존자였대요. 운도 좋죠, 참...
그러다, 언제였을까요. 고등학생 때인가. 아버지의 유품을 그제야 정리하다 일기를 봤어요.
몇 년 치가 쌓여서 제법 많았는데 그걸 단숨에 읽었어요.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아버지의 비밀을 하나 알아버린 셈이죠. 성태 씨와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 (견우는 푸스스 웃어보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사라진 후에도, 심지어는 제가 태어난 후에도 당신을 찾으려 하셨어요.
그걸로 아버지나 당신을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아버지는 그럼에도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니까... 다만,
일기를 모두 읽은 후에도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워낙 속내를 알 수 없는 분이시기도 했고, 저는 너무 어려서 알 길이 없었어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당신을 줄곧 만나고 싶었어요.

기회만 된다면 당신이 향한 길을 그대로 따라서, 우주로 나가 당신을 만나고 싶었는데...
저는 비행기를 못 타더라구요. 그것도 몇 년 전에야 알았어요. 그래서 항법 시스템을 만드는 연구원이 된 거예요.
모두 당신을 보려고요.
아, 말이 너무 길었다... 죄송해요.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해서, 머리를 치고 지나간게 있어요. 형은 정말 날 단하루도 잊지 않았구나, 하는거.
형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적어도 지구에서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견우씨도 행복했음 좋겠어요. 외롭지 않게, 다른이에게 사랑받으면서. 더이상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형이 날 하루라도 잊지 않았다고 해서.. 견우씨가 없는 사람도 절대 아니니까. 형도 그걸 바랄거라고 생각해요.. 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왜 진작에 몰랐을까요? 조금만 애쓴다면 모두 기억해낼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나까지도 아껴줄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건데...
심리학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예견우의 얼굴 위로 그 어떤 지독한 외로움 같은 것이 스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깔린 죄책감도 함께.

이거, 중요한 물건이죠? 몰래 가져왔어요. 저 잘했어요?
예견우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당신에게 건넵니다.
아, 내밀어진 것은 다름 아닌 보름달 모양의 펜던트 목걸이입니다.
전시관에 홀로 남겨져 있던 그것.
견우의 손가락에 걸려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 그 모든 여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모습으로.


... 어때요? (주인에 대해 더 따지는 건 서로에게 깔끔하지 못한 일이겠죠. 이내 견우는 천천히 미소하며 성태를 응시해요.)


그 사이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예견우는 문득 시계를 보더니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내밀어진 손. 잡는 것은 역시 당신의 몫입니다.
5. 새벽의 무전기
천체투영관을 나와 두 사람은 센터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 센터에 도착합니다.
당신의 숙소까지 박성태를 바래다준 예견우는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돌아갑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당신?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또 함께했습니다.
다름 아닌 견우와….
당신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창가 너머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은 속절없이 지나갑니다.
...
.....
...... 어떻게 다시 ......
막 돌아온 ......
... 미쳤어요? .....
한밤중 무전기에서 갑자기 소음이 들려옵니다.
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드문드문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듣기 판정

박성태:
기준치: | 70/35/14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신을 차리고 들어 보니 예견우의 목소리 같습니다.
지직거리는 소음이 심해서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한마디는 명확하게 들립니다.
"그 사람 태울 거면 차라리 나를 태워요."
한참을 지직거리며 드문드문 예견우와 다른 어떤 목소리를 뱉던 무전기는 이내 고요해집니다.
뭔지는 몰라도 예견우가 굉장히 화가 난 듯했습니다.
혹시 당신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견우는 본인 없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어쩐지 걱정이 되어 다시 쉬이 잠을 청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예견우를 찾으러 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숙소 문을 열면 밖은 컴컴한 복도입니다.
비상구 표시를 따라가면 끝에 희미한 조명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4층부터 지상 23층까지 있습니다만, 어쩐지 버튼이 눌리지 않네요.
관찰력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층을 누르는 버튼 위에 사람의 지문 모양이 옅게 그려져 있는 유리판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사용자 코드 ST-0530 인식되었습니다.
당신이 유리판에 손가락을 누르자 어두웠던 엘리베이터 내부와 번호판에 불이 들어오면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다행히 아직 당신이 센터 소속으로 등록되어 있었군요!
하지만 17층만 점등된 것으로 보아 당신의 권한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띵.
17층에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어제 보았던 그 세 갈래 복도가 보입니다.
왼쪽에는 <박성태 프로젝트실>, 가운데에는 <연구실 001-010>, 오른쪽에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어디부터 가 봐야 할까요?

카드 키를 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1호실부터 10호실이 일렬로 늘어져 있습니다.
각 문마다 낯선 코드들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씩 훑다 보면 복도 맨끝에 위치한 10호실에 붙어 있는 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
ST-0515... 가 붙어 있습니다...
노크를 하려거나 손잡이를 당겨 보면 나가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것인지,
문이 조금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구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다 나간 듯 서류며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형광등도 환하게 켜진 상태입니다.
책장과 책상, 그리고 화이트보드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부터 볼까요?

여러 나라 언어들로 된 천체물리학에 관한 책들이 잔뜩 꽂혀 있습니다.
당신의 숙소와 비슷한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훨씬 양이 방대한 것 같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박성태:
기준치: | 65/32/13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딘지 위화감이 느껴지는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언어들과 함께 <시간의 관문 개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SANc 1/1d3

rolling 1d3
()
1
1
기준치: | 65/32/13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복잡한 수식들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자들이 뒤로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해석해볼까요,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요?

정말?

타임 패러독스를 발생시키지 않고 과거로 갈 수 있다니요?
순간적으로 박성태의 머릿속에 스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박성태는 2029년, 노바 09호를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책장에선 더 볼 것이 없습니다.

여러 논문들과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우편물과 일기로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부터 볼까요?

그 다음, 일기로 시선을 돌립니다.
일기를 읽고 나니 그 다음 장에 끼워져 있던 카드 키가 툭 떨어집니다.
이제 화이트보드를 볼까요?

새하얀 화이트보드에는 복잡한 수식들이 적혀 있습니다.
과학-천문 판정을 통해 수식들을 살필 수 있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 수식들은 2069년과 과거 어느 시점 사이의 광년을 계산하는 과정입니다.
언뜻 로렌츠 변환도 보입니다.
그 아래에는 라고 적혀 있습니다.
Operation: 여백 10호...
이제 어디로 향할까요?

떨리는 발걸음으로 박성태 프로젝트라고 붙어 있는 문 앞에 도착합니다.
여백 10호
카드 키를 인식하면 기계음과 함께 철문이 열립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당신 앞에 보이는 것은 아름답게 직조된 우주선입니다.
선체에는 <여백 10호>라고 써 있습니다.
인류의 가장 뛰어나고 유려한 창조물.
어떻게 할까요?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면 조종석과 조종 계기판이 보입니다.
시간은 사십 년이 흘렀지만 우주선의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치들의 생김새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워졌지만, 오히려 당신에게는 오랜 익숙함과 안락함이 느껴집니다.
항법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계기판 조작을 통해 원활하게 항법 시스템을 작동시켰습니다.
화면이 점등하는 동시에 귀에는 익숙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백 10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노바 09호의 음성과 동일하군요.
그렇다면 음성 명령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말해야 프로그램이 실행될까요?

기준치: | 55/27/11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예견우가 개발한 '시간 역행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키워드가 무엇일까요?

시간 역행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패스워드를 입력해 주세요.
패스워드는 여섯 글자의 숫자로 입력할 수 있습니다.

기준치: | 55/27/11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여백 10호는 노바 09호의 여정을 이어가고자 만들어진 우주선입니다.
프로그램을 설계한 견우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날짜가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박성태, 당신조차 이 날짜를 기억할 거예요.

시간 역행 프로그램 실행 완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노바 09호, 아니, 여백 10호의 음성과 함께 화면이 바뀌고 나타난 것은,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박성태의 귀에 싸늘한 목소리가 꽂힙니다.
이제 들어보니 누군가의 목소리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아,
여백처럼 표정 하나 없는 예견우입니다.
예견우의 얼굴은 본 적 없이 싸늘하게 굳어 있지만 어딘지 행동에서는 조급함이 묻어납니다.
화면에 떠 있는 시간 역행 프로그램을 본 예견우는 성큼성큼 다가와 당신의 팔목을 잡습니다.





보시다시피 그걸 이용하면 당신은 우주선이 발사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어요. 원래는 제가 비행기 사고를 되돌리려 개발한 프로그램이지만,
제가 돌아가버리면 당신은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요. 영원히 남들보다 몇십 년 빠른 삶 속에서 외롭게 살 것 같아서.
그래서 좌표를 바꿔뒀어요, 당신은 그걸 쓰기만 하면 되는 거고요.



견우의 말대로라면 이 모든 걸 다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도, 홀로 이 땅에 이방인으로 남겨진 이 모든 여백도.
지구에 돌아온 뒤로 얼마를 생각했던가요.
노바 09호를 타지 않았더라면.
그 서러운 회고를 평생 반복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수정할 수 있다면, 자신을 기다리던 청명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을 일도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전 방금 센터 위원회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당신을 새 프로젝트의 파일럿으로 태울 계획이에요. 지금 막 지구에 복귀한 당신을 다시 그 궤도에 태우겠다는 뜻이라고요. 당장 내일부터 훈련에 들어가겠대요.
그러니 지금 돌아가세요.
지금이 이 모든 여백을 거스를 유일한 기회예요.
예견우는 괴로운,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합니다.
지금 당장 2029년 12월 30일로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야 한다고요.
하지만, 하지만요.
이상하잖아요?
왜냐하면 그때로 돌아가 당신이 노바 09호를 타지 않는다면, 혹은 AL-0922 행성을 가지 않고 돌아온다면,
그리하여 보고 싶다는 그 메세지를 완벽히 전송하고, 다시 청명을 만나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다면….

당신이 말했듯, 견우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SANc 1/1d3

기준치: | 65/32/13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1d3
()
2
2
..견우야, 돌아가도 꼭 널 만나러 갈게. 그 때는 다른 관계로, 다른 나이로.

약속하신 거예요.
END 2.
그래요. 돌아가야 합니다.
원래 당신이 있었어야 할 시간으로.
당신의 결정을 들은 예견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기판을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시간 역행 프로그램 실행합니다. 도착지는 2029년 12월 30일입니다.
익숙한 음성이 귀에 들려옵니다.
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길고 어려운 꿈이었던 것만 같습니다.
"약속할게요, 우리는 이 여백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 말을 하며 웃는 예견우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슬픈 얼굴이 아닙니다.
여백이 있었기에 당신을 만났으니까요.
예견우의 얼굴에는 그 어떤 후회도,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당신이 선물한 목걸이를 소중히 꼭 쥐고 우주선을 떠납니다.
아, 선체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연료가 채워지지 않았음에도 선체는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굉음과 함께 떨려 옵니다.
그래요.
이제 눈을 감고 나면 2069년의 지구도, 그 모든 여백도 오래된 미래가 될 것입니다.
출발합시다, 박성태.
10, 9, 8, 7.......
깜빡, 깜빡.
느릿하게 눈을 뜬 당신 앞으로 가운을 입은 수많은 연구원들이 보입니다.
노바 09호의 발사를 지켜보고 함께하기 위해 모인 당신의 동료들이에요.
다들 환한 얼굴로 잘 다녀오라며 격려를 해 주고 있군요.
그리고 그 사이에, 마냥 반기는 듯한 얼굴은 아니지만,
당신의 뒷모습을 먼치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청명.
"사랑해. 언제나 그럴 거야."
아, 2023년의 그날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군요.
이제 박성태는 노바 09호를 타지 않거나, AL-0922를 거치지 않도록 궤도를 수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기만 하면, 당신은 청명이 존재하는 시간을 지킬 수….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명의 목에 보름달 문양의 팬던트 목걸이가 걸려 있습니다.
선물한 적 없는 목걸이가 왜 청명에게 걸려 있죠?
당신이 목걸이를 빤히 보는 것이 느껴졌는지 청명은 시선을 피하며 목걸이를 감춥니다.
맞아요. 아직은 그런 대화를 나누기 소원한 사이였죠...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그 목걸이가 청명에게 있는 걸까요.
어리둥절한 당신의 머릿속으로 부드럽게 웃던 예견우의 모습이 스칩니다.
"약속할게요. 우리는 이 여백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뭐, 아무렴 좋습니다.
이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겁니다.
돌고 돌아서,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지구로 돌아올 거예요.
카운트다운이 꿈결처럼 지나가고,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중력이 느껴집니다.
아.
그 속에서 당신은,
별안간 때늦은 감상을 떠올립니다.
왜 그의 이름이 견우였는지.
... .......
"'보고 싶어요, 형.'"
그리고 언젠가,
예청명은 자신의 오피스에서,
성태가 보낸 메세지를 수신합니다.
END 2. 기억의 습작
당신의 메세지는 우주 공간 속에서 유실되지 않고 지구에 전해집니다.
이제는 교수가 된 정인과 스승 윤 교수는,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청명에게 전합니다.
청명은 후발대에 합류해 당신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두 사람은 견우성이 빛나는 행성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프로젝트 알타이르, 프로젝트 코락스,
알타이르,
견우성을 향하여.
END 4.
기억 역행 프로그램을 삭제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박성태는 기억 역행 프로그램을 폐기합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2029년의 지구를 왜 포기하는지 본인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대로 돌아가는 건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2069년의 지구에 도착한 뒤로 자신과 줄곧 함께한 예견우 때문일까요?
혹은 그와 함께하며 보았던 낯설고 아름다운 미래 때문일까요?
스스로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랑 함께 하시겠다구요..."
예견우의 물음에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롯하게 박성태, 당신의 선택이고, 당신이 살아내야 할 여백입니다.
다름 아닌 바로 이 2069년의 지구에서.
프로그램 삭제 가동.
10, 9, 8.......
.......
여백 10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박성태 님.
오늘은 날이 유난히 화창하고 따사롭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아름답네요.
귀에 들리는 음성은 이제 꼭 가족같이 느껴져요.
지난 일 년 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2069년의 지구에 적응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즐겨 먹는 커스텀 메뉴도 대여섯 개쯤 생겼고,
얼마 전엔 ‘멋진 신세계’에서나 나오던 오감영화를 혼자서 관람했어요.
2069년의 지구는 여백이 살기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새롭고 낯설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백 10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견우 님.
박성태 프로젝트의 파일럿은 꼭 당연한 수순처럼 당신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예견우는 박성태만 보낼 수 없다면서 재활 훈련을 시작했고,
결국 우주 비행사의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2069년의 중력에 적응하는 동안, 예견우는 여백의 무중력에 적응한 셈입니다.
"정말 가도 괜찮겠어요?“
청명을 닮아 그림자처럼 짙고 우울한 남자,
견우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우주복 여기저기를 괜히 확인합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으니 빨리 말하라고 투덜거리기까지 하네요.
이번 탐사가 얼마가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 년,
혹은 삼 년이 걸릴 수도,
어쩌면 다시 사십 년이 걸릴지도요.
하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몇 년이 걸리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우주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예견우, 우리의 목표는 우주의 모든 별을 탐사하는 것이다."
"네엡."
나란히 앉은 조종석 안,
이륙음과 동시에 마주하는 시선에서 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두 번째 여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END 4. Champagne Supernova
두 사람은 함께 여백 10호를 타고 탐사를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시간의 관문을 만날지 혹은 온전한 시간선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예견우 생환, 박성태 생환
END 2. 예견우 로스트?, 박성태 생환
1. 기본 스토리에 제가 쓰고 있는 글 내용을 섞어서 개변하고 다녀왔습니다. KPC가 청명의 아들인 견우였고 PC가 성태였는데.. 시나리오 개요에도 나와있듯 ntr 주의하셔야 합니다 . 설정을 어케 짜보려해도 결국 엔티알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여담이지만 견우는 이제 성청 세계관에 집어넣구 잘 키울 작정입니다 우리 견우 귀여워.
2. 이게 본 시나리오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예강 청명 그리고 견우에 이르기까지 이 집안 삼대가 겪은 '아버지'에 관한 비극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청명이 겪은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청명의 인생을 뒤흔들었다고 보는 편이에요 강은 수현을 아꼈기 때문에 스스로 보잘것없는 아버지가 되길 자처했고 청명이 오이디푸스의 비극처럼 수현을 사랑하는(성애적 의미 아닙니다) 마음으로 아버지를 살해했어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둔 청명 역시 올곧다곤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리고 만 겁니다. 물론 뭐 이 이야기랑 난여백의 이야기는 설정이 다르긴 하지만 이게 캐릭터의 베이스니까요….
하여간, 청명이 자식을 둔다 하더라도 그 기억은 두고두고 영향을 줄 겁니다. 자신이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했던지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해요. 하지만 난여백에서 청명은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초라하게 굴어야만 합니다. 모두가 성태는 죽었다고 믿기 때문에 청명은 홀로 성태를 찾아야 해요.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꿋꿋이 성태를 찾겠다곤 했지만… 청명은 그러면서도 서서히 지쳐갔고... 보시다시피 그 결과는 견우의 존재로 귀결됩니다….
여하튼 아무리 도리를 다하기 위해, 적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청명이 애쓴대도, 성태를 자신보다 사랑하는 청명은 결코 견우에게 좋은 아버지일 수가 없습니다. 청명 본인 생각이 그러해요…. 애초에 멀쩡히 좋은 상황에서 낳은 자식이었어도 청명은 견우에게 죄책감이 컸을 걸요.
그러나 초라한 아버지를 둔 청명과 견우는 각각 또 성향이 다릅니다. 본질적인 차이는 청명과 견우가 자신의 아버지를 얼마나 증오했는가의 척도로 나타납니다. 청명은 강을 극렬히 미워했고 견우는 청명을 사랑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청명이 강을 증오한 이유는 자신이 아버지와 꼭 닮았기 때문이고, 견우가 청명을 사랑한 이유도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답니다…. 결국 다시 성향 차이이긴 하네요.
본인의 상처와 욕심을 미움과 증오로 해소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예강, 고수현, 예청명, 그리고 청아, 견우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이야기를 통해 제가 반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고리타분하지만 아주 좋아하는 이야기여서요…. 보면 청명을 구원하는 것 역시 언제나 성태의 애정과 성태를 향한 자신의 애정이었죠. 난여백에선 자각하지도 못한 잠재된 애정을 견우가 닮아감으로써 '아버지'의 비극이 이어지는 연쇄를 끊어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2-2. 견우가 청명을 꼭 닮았다는 묘사를 자주 썼습니다. 이 집안은 아버지 직계 유전자가 좀 많이 센 편인 듯. 아무튼 그리 표현한 이유도 비교적... 2번을 읽고나면 명백해질 겁니다. 청명을 닮은 밝은 청년 < 이라는 이상하고 기묘한 설정들이 성태에게 위화감을 자아내길 바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청명을 가장 많이 닮았지만 청명의 단점까진 닮지 않았다는 묘사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우울한 인상,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새카만 눈동자를 지닌 남자, 청명을 닮은 견우가 우습게도 네 사람이 얽힌 비극을 끊어내죠. 청명은 절대 하지 못할 방법을 동원해서요….
3. 조실부모한 후로 견우는 윤 교수가 맡아주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알타이르 관측 일기에서도 나오지만 윤 교수, 그러니까 윤형은 청명을 정말 친아들처럼 아낍니다. 성태도 아끼시긴 했는데 그거랑은 갈래가 좀 달라요. 하여튼 윤 교수는 부인의 동의를 얻고 견우를 맡아 돌봐줍니다. 그도 그럴 게 견우를 돌봐줄 친지 자체가 전무했죠. 청명은 형제자매 하나 없고, 수현이 청명의 아이를 맡아줄 리 없으며 (알타이르~ 에서 청명은 내다 버린 자식으로 취급됩니다. 원하는 대로 엇나가주지 않았잖아...) 그렇다고 가까운 친척이 있지도 않아요. 결국 남은 게 교수님 말곤 없었네요…. 그런 이유로 견우는 한 교수(=정인)와도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는 설정.
4. 알타이르 관측 일기와 이어지도록 개변했습니다. 실제 작품 전개엔 영향이 없지만 난여백을 개변하는 데는 알타이르 관측 일기의 영향이 매우 지대했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특정 엔딩의 결말부는 뚝딱뚝딱 갈아엎었고…. 중간에 핸드아웃에서 성태로부터 수신되었던 마지막 신호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신호가 점 하나 선 두 개고, 센터는 그걸 SOS (점 세 개, 선 세 개, 점 세 개) 신호가 일부 유실되면서 점 하나, 선 두 개, 이후 없음... 으로 전송된 거라고 해석했다 하죠. 사실 그 신호는 알타이르 관측 일기에 나오는 그 모스의 시작 신호 (.--) 입니다. 그래서 성태가 시간 이상에 얽히지 않는 엔딩이 알타이르 관측 일기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 신호가 모두 유실되지 않고 온전히 지구로 돌아와야 청명이 지구를 떠나 알타이르로 오니까….
5. 일단 개인적 감상으로, 난여백에서 견우라는 존재는 손실되었다고 봅니다. 청명이 받았던 목걸이의 존재는 크툴루적 허용이라고나 할까요... 네에.
결론:
글이나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 때 광적으로 메시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늘 전하는 메시지들이 제각기 다양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꿋꿋하고 꾸준한 사람인지라 똑같은 얘기만 합니다. 특히 제 입으로 못났고 (얼굴 말구요오) 못돼먹었다고 까는 청명에 관해선 의식적으로 같은 얘길 해요. 그런 삶은 옳지 않지만 널 그렇게 만든 주변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바뀌어 보자 혹은 네가 상처받지 않을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자 따위의…. 하지만 같은 비극에 처해도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볼 때 청명에게도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단지 참작될 뿐이죠.
청명의 이야기를 쓸 때는 이런 이유로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청명이 겪은 비극을 씁쓸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면서도 그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요. 어떤 면에선 딱 홍콩 느와르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결국 거지같은 행동으로 인생 다 말아먹고 구덩이에 빠져드는데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파야 함. 딱 홍콩 느와르를 보는 이유죠?
하여간에, 이게 알타이르 관측 일기의 단방향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이야기인지라 주저리 써보았습니다. 알타이르 관측 일기가 청명이 모든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라면 난여백 (제가 개변한 파트 한정으로 하는 말) 은 일어서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청명을 견우와 성태가 함께 구제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사실 청명이 잘못되었고 악인이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뭐, 어떤 이야기든 청명은 사서 고생하는 불행하고 못돼먹은 외로운 인간입니다. 그래도 그런 청명을 건져올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에겐 위로일 거예요. 평생에 걸쳐 시달린 고독과 고통이 한두 사람만으로도 지워질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고, 이번에도 했습니다. 사랑의 (고리타분한) 위대함 같은 거.
모쪼록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세션이길 바라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