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청

상실의 바다

철재_ 2022. 8. 12. 21:27

 

상실의 바다
 
2021. 6. 27.
 
덜컹-
 
불쾌한 승차감이 잠들었던 당신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속삭임과 함께
 
누군가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지네요.
 
그 안락한 손길 때문인가요?
 
아니면 무거운 눈꺼풀 탓인지...
 
다시 나른한 감각이 온몸에 퍼져나가며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
 
어부:도련님, 도착했습니다요.
 
누군가 당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눈이 다 떠지지 않은 채 바다의 짠 내음과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우 눈을 다 떠보니,
 
지금 시간은 밤인 듯 둥근 보름달이 하늘 위에 자리를 잡고,
 
중년의 남성이 당신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도대체...?
 
정신력 판정
 
박성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맞아요.
 
오늘은 힘들게 닿은 브로커와 함께 인어를 찾기 위해 밤바다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부:얼른 일어나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인어 고것을 놓치고 맙니다요.
저희도 날이면 날마다 보는 것이 아니라,
구전이 돌고 돌면 겨우 하루를 보는지라….
 
아, 그랬죠.
 
그제야 생각이 납니다.
 
예청명:당신은 인어를 찾기 위해 이 늦은 시간에 나왔었죠.
 
항만에서 낚싯배를 몰고 다닌다는 추레한 남자는,
 
소개비를 달라며 진작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어부:해서, 인어를 데리고 고관대작님네들 눈요기를 하신다고요?
 
박성태:(내밀어진 손을 보며 헛웃음 짓더니 팔짱을 푼다.) 나참... 그렇습니다. 자세한건 비밀이라, 네. (자켓 품을 뒤적이다가 값비싼 보이는 장신구를 얹어준다.)
 
어부:아유, 고맙습니다. 역시 경성에서 제일가는 집안 도련님이라 그런지 통이 크십니다그려. 좋은 데 쓰겠습니다.
 
연신 굽실대며 당신을 배웅하는 어부를 뒤로하면,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집니다.
 
당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경성부에 있는 조선의 것이라면 모두 박가의 소유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부를 축적한 가문.
 
대대로 정승을 배출했다는 명문가는,
 
어느새 일제의 비호 아래 한 뼘 남짓한 경성을 차지하고서 부끄러운 명성을 유지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좁은 항만에 나타난다는 인어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죠.
 
경성부에 있는 조선의 것은 모두 박가의 것이어야 하니까.
 
물론 그렇게 잡아들인 인어는 일제의 고관들과 귀족에게 좋은 전시물이 될 테고요.
 
… 그것이 바깥에 내세울 유일한 명분이었습니다.
 
지주회사로 향해야 했던 폭탄이 발각된 날,
 
그리고 그 이후로 당신이 몇 년간 자리를 비운 사이
 
경성에는 인어를 노리는 치들이 늘었다지요.
 
미쓰비시 옥상 카-페에선 그 인어에 대한 가십으로 일본인들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고도 하고요.
 
여자인지, 남자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는지,
 
그들은 과연 거품이 되는지,
 
아니면 거듭해 침잠하는지.
 
...
 
하지만 그 답을 아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그날 이곳에서 인어를 만난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보름달의 바다
 
인력거에서 내리자,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푸른색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달빛과 별들이 하늘에 수를 놓은 듯 보입니다.
 
일렁이는 바다는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까지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습니다.
 
마치 바다와 하늘이 이어진 듯한 세계를 보는 듯합니다.
 
낮에는 물류를 옮기느라 언제나 분주한 편이었지만,
 
그 소란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기라도 한 듯 밤바다만은 사뭇 고요합니다.
 
박성태, 무엇을 할까요?
 
박성태:(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바다로 한걸음씩 다가갑니다.) 청명아, ...나야. (발목이 잠길때 쯤 멈춰서더니 바다를 둘러봐요)
 
저 멀리 서 있는 어부를 의식하기라도 하는지, 아직 인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다를 둘러보면 청명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 멀리에서 돌고래 같은 형상이 육지를 향해 헤엄치는 게 보입니다.
 
정신없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당신을 뒤따라온 어부는 당신의 손에 꼬깃꼬깃한 쪽지를 쥐여줍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뒷면을 살펴보니 지워진 자국이 글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인어가 죽기라도 하면 비싼 값을 버려야 할 터이니 안타깝게 되었소만.
 
인어는 연모하는 이에겐 선물을 남긴다 하오-
 
손해에 보태시오.
 
꼭 쪽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며 강조하는 어부는,
 
이 바다에 나타나는 인어는 보름날에만 나타나니
 
오늘이 지나면 장장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 역시 잊지 않습니다.
 
어부:도련님, 더 궁금한 점은 없으신게지요? 저 인어 저것이 영물이라...
 
박성태:..인어를 가까이서 보신적 있습니까?
 
어부: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밤에 오징어 그물을 건지러 갔는데 물 아래로 그물을 턱턱 끊는 갈퀴 같은 것이 보이지 뭡니까.
그게 뭔가 했더니, 물고기 그물을 다 끊어놓고 도망가는 인어 고것이더라 이 말이지요. 그날은 완전 허탕을 쳐버려서 기억하지요...
 
박성태:이 쪽지는 그럼..누가 남긴 거죠?
 
어부:이런 것은 사실 우리 조선인들 사이에 다 구전으로 돌고 도는데, 아 글쎄 저희는 까막눈이 아닙니까. 그래서 인어를 찾는다는 귀하신 분들이 몇 장 흘리고 간 것을 모아놨지요.
일본인들도 그렇고 조선의 손 큰 분들도 인어를 자주 찾습니다요. 그나저나 경성 앞에서 인어가 나타난 것은 이 녀석이 처음이라, 나리들이 다들... 아휴, 도련님께 귀한 정보 알려드린 겁니다요.
 
박성태:..그럼 수고해요. 내가 인어를 찾았다는 소문은 전하지 말고. (고갤 끄덕이면서 쪽지를 겉옷 주머니에 넣어둡니다.) 자릴 비켜주시겠어요? .. 인어를 혼자 보고싶어서.
 
어부:예, 예. 살펴가십쇼, 도련님. 혹여 필요하신 게 있으면 다른 놈들 말고 이놈한테 물어보셔야 합니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면 어부의 모습이 조그만 점으로 흐려져만 갑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밤의 바닷가는 고요하기 그지없으며,
 
그저 시원한 파도 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간질이고 지나갈 뿐입니다.
 
바닷가에서 <앞바다>, <오두막>, <절벽> 탐사가 가능합니다.
 
박성태:(오두막부터 향합니다.)
 
<오두막>
 
바닷가 근처에 있는 낡은 오두막입니다.
 
구전에 의하면,
 
한성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에서 무작정 도망을 나온 딸이
 
혼삿길을 모두 쳐내고는 이곳에서 홀로 살아갔다지요.
 
아마 딸의 혼인 상대가 막 조선에 입성한 일본 장교였다던가요.
 
다만 여자는 언젠가부터 시름시름 폐병을 앓더니
 
결국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진 데는 여자를 기리기 위해 벌였던 굿판이 워낙 컸던 탓이 크겠죠.
 
그 일이 있은 후로 지금 이 오두막에는 그 누구도 살지 않습니다.
 
안쪽을 살펴보면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침대>와 주인을 잃어 먼지가 가득 쌓인 <책상>, 그리고 <닫힌 방>이 보입니다.
 
박성태:...별로 살펴보고 싶진않은데..(꺼림직..)(책상부터 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책상 위에는 먼지와 함께 여러 책이 어질러져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박성태:(책 제목이라도 봅니다)
 
책에는 별 특징이 없습니다. 그냥 그저 그런 소설책이나 시집 따위가 있네요.
 
그런데 책을 뒤지던 중, 어질러진 책들 사이로 하얀 종이가 보입니다.
 
어린아이의 그림이네요.
 
여성과 인간의 형상을 한 물고기…?
 
그리고 고양이와 어린아이가 서 있습니다.
 
하단에는...
 
우리 가족, 이라고 적혀있네요.
 
어린아이의 기괴한 그림을 본 박성태, SANc (0/1)
 
박성태: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침대를 살펴봅니다)
 
주인을 잃은 침대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불을 들춰보니 말라비틀어진 해국과 순백색의 진주가 이리저리 놓여있습니다.
 
왜 이런 게 여기 있는 걸까요…?
 
박성태:(마지막으로 닫힌 방을 열어봅니다.. 좀 많이 망설여요..)
 
유일하게 닫혀있는 방에는 단단한 자물쇠가 안을 보여주기 싫은지 입구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박성태:(얌전히 포기하고 절벽으로 가봅니다)
 
<절벽>
 
절벽이 있는 길을 올라가 보면, 해국으로 뒤덮인 풍경이 보입니다.
 
이곳에 서 있으면 좀 더 청명을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사이,
 
어디선가 잔잔한 선율의 노랫소리가 고요한 바닷가를 채우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걸까요.
 
듣기 판정
 
박성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노랫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절벽 아래에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들립니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입니다.
 
당신은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어요.
 
무언가에 홀린 듯 노랫소리를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절벽 아래의 한적한 바닷가에 와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에 뛰어왔는지,
 
당신의 목 끝까지 숨이 차올라 숨을 가쁘게 내쉽니다.
 
어두운 바닷가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작은 바위에 누군가 앉아
 
절벽에서 들은 잔잔한 목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요.
 
한 걸음씩 노래를 부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 보니.
 
점점 목소리 주인의 형태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달빛을 받아 반사되는 머리카락은 약간의 물기를 머금어 젖어있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노랫소리와 어울리는 신비로움을 내뿜는 듯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것의 형상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당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인어, 청명이군요.
 
이윽고 청명은 당신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급히 바다로 뛰어듭니다.
 
당신이 수년간 자리를 비웠으니,
 
청명 역시 저를 찾아온 손님이 성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거겠죠.
 
바위 뒤, 빛이 가려 들어오지 않는 자리에서
 
청명은 눈을 한쪽만 드러낸 채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명은 언제나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많았었죠.
 
다행히 도망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박성태:..네 이름을 알아. (다가서지 못하고 안심시키려는듯 손을 천천히 뻗습니다.) 너도 날 알잖아, 청명아.
 
당신이 이름을 소개하자. 바위 뒤에 숨어있던 청명이 급히 얕은 물로 나옵니다.
 
예청명:... 정말로 너야? (꼬리를 첨벙거리자 포말에 뒤섞인 물방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였지만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태도입니다.) ... 왜 그간 찾아오지 않았어?
 
박성태:응..박성태야. (천천히 다가서더니 슬 웃어본다.) ..공부하느라. 똑똑하지 않으면 널 지킬 수 없으니까. ..보고싶었어 청명아. 내가 안찾아와서 미웠어?
 
예청명:조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 찾아다녔는지 모르지. 그게 너일까봐 몇 번을 기대하고 실망했단 말이야. 갈 거면 말이라도 하고 갔어야지, 무책임하게도...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팔로 모래를 디디던 청명이 상체를 겨우 일으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반신을 물에 잠긴 채로 나올 생각이 없습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 줄 거야?
 
박성태:너를 다른 사람들이 찾았다고? ..잘 있는거보니 다행히 널 건드리진 않았네.. (혼자 중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표정을 푼다) ..무책임해보였구나. 너한테 확신을 주고싶었어. 마음 놓고 내 옆에 있어도 된다는 안도감..같은거. (네 뒷 말에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몇 년을 함께한.. 만년필을 건넨다.) 이건 어때 청명아?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 물론.. 바다에서는 써지지 않을거고. 이런 돌에 쓰면 좋아.
 
예청명:(첨벙, 소리와 함께 청명이 손을 뻗어 잽싸게 만년필을 받아갑니다.) 네가 없는 동안 육지에 있는 것들이라곤 거의 구경조차 못했는데. (만년필 끝을 손등에 찍어보다가,) ... 고마워.
있잖아. 요즘 육지를 구경하고 싶어졌어. 물론 네가 없었으니 상상도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잖아. (은근히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박성태:미안, 이젠 꼬박 주러올게. ...육지구경? (네 말에 당황한듯 목덜미를 쓸어보다가 눈을 굴린다. 그럼.. 꼬리는? 꼬리는 어쩌지? 다들 인어인걸 알면 청명이를 두고 자기들끼리 난리가 날텐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단호하게 거절할 순 없죠.) 그래, 그러자. 언제가 좋겠어?
 
예청명:네가 준비가 되는 대로.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 성태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 수평선 근처를 응시합니다.) ... 해가 뜨네. 이제 슬슬 가봐야지. 내일도 다시 찾아올 거야?
 
박성태:준비가 충분히 끝나면 그 때 데리러올게. 너랑 이것저것 해보러 가고싶었는데.. 잘됐네. (청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멍하게 쳐다보다가) 응, 당연하지. ..내 친구 말로는 넌 보름에만 나온다고 하던데, 내일 내가 부르면 와줄거야?
 
예청명:네가 부르는 거라면 찾아오겠지. 평상시엔 위험하기도 하고, 그냥, 뭐 별 이유는 없지만... (청명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다뭅니다.) 그럼 내일 보자. 가봐야 해.
 
다시 만나는 약속을 기약하며,
 
청명은 화려한 지느러미를 늘어뜨리며 깊은 수심으로 사라져갑니다.
 
어쩐지 급해보였지만, 그건 아마도 바다로 속속 나타나는 인기척 때문이었겠죠.
 
고요한 새벽녘의 너머로,
 
일감을 찾기 위해 나오는 인부들과
 
순사들의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경성에서 요정을 수어 개나 운영한다는 모리,
 
수집광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면 모두 사들이고 본다는 사이토-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인에 준하는 명성을 찾으려는 조선의 유력한 인사들까지,
 
모두가 뒷돈까지 주어가며 바다를 스쳐가는 사람들을 매수해 인어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청명이 해변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무엇이 최선일까요.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항구를 떠나는 배들로부터 만선가가 들려옵니다...
 
저택
 
오늘 아침이 되어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당신은 쪽잠을 자고 금세 처리해야 하는 원고를 처리했습니다.
 
바깥에 내세운 당신의 업무는 바다나 경성의 풍경에 관한 글을 써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저술가, 내지 작가,
 
더 못되게 묘사하자면 권력에 기대어 게으르게 살아가는 지식인일까요.
 
그러나 그런 당신이,
 
밤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도와 폭탄을 나르고
 
선전물을 작성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경성을 떠난 몇 년간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요.
 
당신이 계획한 전시관의 모습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바다 말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어를 위해 바닷물을 길어 수조 안을 채워놓았고,
 
여느 방 못지않은 넓은 수조가 펼쳐져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까지 닿는 수조에서는 인어와 대화도 나눌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아직 그 수조 안에 들어가야 할 인어는 없군요.
 
생각보다 업무가 빨리 끝났네요.
 
아직 밤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저택 안을 돌아다녀 볼까요?
 
박성태:(인어전시관을 둘러봅니다)
 
<인어 전시관>
 
이곳은 저택과 이어져있는 인어 전시관입니다.
 
전시관의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곧 개장을 앞뒀는지 아직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팻말이 입구에 세워져 있네요.
 
박성태:(나가서 응접실로 향합니다.)
(도서실로 가봅니다)
 
<도서실>
 
여러 책이 보관된 곳입니다.
 
어릴 때만 해도 당신은 이곳에 눌러앉다시피 했었죠.
 
여기에선 재밌는 책들이 당신을 더욱 드넓은 세계로 이끌어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어깨에 지닌 짐이 늘어서인지.
 
책을 읽을 시간보다 바깥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동향을 살피는 일에 더욱 익숙해져버렸습니다.
 
도서실은 여러 가지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동화책>, <소설책>, <신화 서적> 등등이 보입니다.
 
박성태:(동화책부터 봅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서 들여왔다는 갖가지 책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책장을 둘러보니 서방의 덴마크에서 수입해온 인어공주라는 책이 보입니다.
 
성운의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선교사들을 통해서 받아온 책이었죠.
 
15살이 되어 바다 위를 구경할 수 있게 된 어린 호기심이 많은 인어가 왕자를 구해주며 사랑에 빠지고,
 
마녀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가로 두 다리를 얻어 인간이 되었지만,
 
어리석은 왕자는 인어를 알아보지 못하고,
 
얼마 있지 않아 아름다운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
 
조약 중 인어는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말이 있었죠.
 
그로 인하여 다른 인어들이 왕자를 죽여 살아남으라고 칼을 건네주지만,
 
인어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왕자를 죽이지 못합니다.
 
왕자의 결혼식 전날, 인어는 결국 밤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되어 사라집니다.
 
다시 봐도 어린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나 슬픈 동화입니다.
 
결국, 인어는 왕자를 위해 희생하니까요.
 
박성태:(소설책을 봅니다.)
 
<소설책>
 
대학을 졸업한 당신이 작가로 살아가겠다 선언한 이후,
 
저택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어렵게 구한 책이라며 외국 소설을 사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이 쌓여가다 보니 손조차 대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죠.
 
그런 책장을 살펴보니 고용인들이 열심히 청소하는지.
 
먼지가 쌓여도 이상하지 않은 이곳은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천히 걸어가 둘러보니,
 
오늘따라 눈에 밟히는 인어공주가 수록된 안데르센 영문판이 보이네요.
 
페이지를 펼치자 당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15살의 인어는 바다 위의 세상을 구경하다가 왕자에게 사랑에 빠지고는 죽을 뻔한 그를 살려줍니다.
 
그 뒤는 당신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어는 왕자를 위해 희생하고 죽음을 맞이하겠죠.
 
... 그런가요?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페이지를 훑어 넘기면 원작은 동화책과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녀는 인어의 목소리를 빼앗았지만,
 
사실은 인간이 되는 물약을 만들기 위해 인어의 피가 필요했고,
 
그의 따른 목소리를 앗아가기 위해 '혀'를 잘랐다는 겁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인어는 두 다리를 얻게 된다면 실상 발을 내디딜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점도요.
 
생각지도 못한 원작의 기괴함에 당신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SANc (0/1)
 
박성태: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신화서적>
 
여러 가지 신화가 담긴 서적들이 있습니다.
 
서양부터 시작해서 동양까지 다양한 신화들이 담긴 서적입니다.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페이지를 펼쳐보니,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작성한 노트의 필사본이네요.
 
이태리에서 온 선교사가 전해준 물건 중 하나였죠.
 
천천히 장을 넘기자 최근 당신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문구 하나가 보입니다.
 
'사이렌은 아주 달콤한 노래로 뱃사람들이 잠을 자게 만든 다음 배 위로 올라가 잠자는 선원들을 살해한다.'
 
사이렌이라고 하면 주로 원초적으로는 새의 형상을 한 여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물고기의 형상을 한 여인을 지칭하는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사이렌은 아주 달콤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맞지만,
 
역시 옛날 신화라서 그런지 왜곡된 부분도 어지간히 있는 모양이네요.
 
박성태:(손님방으로갑니다)
 
<손님방>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 때문에 손님방은 매일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성태의 방>
 
여느 때와 달리 변함없는 당신의 방입니다.
 
귀한 집의 도련님이라서 그런지,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이 부끄럽게도 방 안을 메우고 있네요.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원고지가 쌓여있는 <책상>, 그리고 책상에 연결된 <장식장>이 차례로 보입니다.
 
박성태:(장식장부터 봅니다)
 
비싸 보이는 장식품들이 장식장을 메우고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보석이라던가 골동품들 등등이 보이네요.
 
무엇을 할까요?
 
박성태:(인어가 좋아할만한.. 혹시 모를 입막음을 위해 장신구를 좀 뒤적여봅니다)
 
익숙한 장식장을 둘러보니,
 
금박의 띠를 두르고 있는 투명한 유리 돔 안에
 
우아하게 헤엄치는 것 같은 인어 조각상이 들어있는 스노우볼이 보입니다.
 
청명은 예전부터 반짝거리는 인간의 물건들에 관심이 많았죠.
 
바다에 가기 전 챙겨두는 게 좋겠습니다.
 
박성태:(책상을 봅니다)
 
계속해서 작성하고 있었던 책 원고들이 널려 있습니다.
 
개중엔 경성을 떠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백과사전 원고도 있네요.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원고 사이로 자세히 살펴보니,
 
고급스러운 편지 한 통과 예쁜 풍경이 담긴 그림엽서가 눈에 보입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는 정갈한 한자로 스미다 에이코, 라는 이름이 적혀 있군요.
 
얼마 전 정약을 약속한 정혼자의 편지입니다.
 
그 내용은 당연히도 사랑을 속삭이는 내용이 아닌 자신의 사업에 대한 큰 관심으로 보이네요.
 
뭐 어떻습니까,
 
그들은 당신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조선에서의 지배력을 원하고,
 
당신은 그저 정체를 숨기길 원할 뿐이니까요.
 
같이 있던 그림엽서를 보니 드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네요.
 
지능 판정
 
박성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터치 하나하나가 세밀한 게 마음에 드는 그림입니다.
 
청명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저택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칠흑같은 어둠이 밤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드디어 다시 청명을 만날 수 있겠네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인력거꾼에게 거액의 입막음용 돈을 주고는 바다로 향합니다.
 
하현달의 바다
 
한없이 둥글기만 하던 보름달은
 
어느새 어둠을 머금어 하현달의 형태로 당신을 맞이합니다.
 
바다에는 평소와 똑같이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와,
 
고요하기 그지없게 아무도 없는 절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제 살펴보지 못한 곳들을 마저 조사할 수 있습니다.
 
박성태:(앞바다를 가봅니다)
 
<앞바다>
 
언제나 낮이면 북적거리는 앞바다에는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야심한 새벽에는 어느 누구도 바다를 찾지 않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최근 들어 불령선인을 찾는다는 이유로 경무부가 순사의 수를 대폭 늘렸으니까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어느 누가 용기를 내어 밖으로,
 
그리고 바닷가로 고개를 내밀까요.
 
로-망스란 시대의 전유가 아니라 권력의 전유인 법입니다.
 
바다 근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박성태:(유리병을 봐요..)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발밑에 낡은 유리병 안에 뭔가 있습니다.
 
주워보니 안에는 편지가 있네요.
 
누군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보입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어디로 여행이나 이사를 간 걸까요…?
 
하기사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박성태:(절벽으로 향합니다)
 
이전에 청명을 만나기 전 올라왔던 해국으로 뒤덮인 절벽입니다.
 
그때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었죠.
 
아름다운 전경 사이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쓸쓸한 묘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묘비에 낡은 열쇠 목걸이 하나가 걸려있습니다.
 
어디에 쓰는 열쇠일까요? 가져가는 게 좋겠습니다.
 
<오두막>
 
닫힌 방의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앞을 가로막은 자물쇠가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열립니다.
 
닫혀있던 방 안으로 들어서자,
 
창문 하나 없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어두운 공간이 나타납니다.
 
다행히 바깥의 달빛이 굴절되어 들어온 덕에 방 안을 살펴볼 수 있겠네요.
 
이곳 또한 오랫동안 주인을 잃었는지 먼지가 쌓여있습니다.
 
비교적 밖과는 다르게 더 많은 책과 장난감, 여러 생활용품 등등이 방 안을 메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 오두막은 분명, 홀로 도망나온 명문가의 여식이 남아 살던 곳이 아니던가요?
 
그런 곳에 장난감이며 책이 있는 방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이곳은 단절되어 있는 걸까요?
 
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방 안>, <장난감>, <책>중에 조사해주세요.
 
박성태:(장난감부터 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린아이의 장난감도 보이지만 고양이가 가지고 논 듯한 두꺼운 종잇장이 보입니다.
 
박성태:(책을 펼쳐봐요)
 
여러 가지 책들이 동화책부터 소설까지 다양하게 보입니다.
 
자료조사 판정
 
박성태: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책 한 권이 탐사자의 눈에 밟히네요.
 
그 책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 동화책입니다.
 
인어가 발견되는 곳에서 인어 관련 책을 보게 되다니, 놀라운 우연이에요.
 
책 마지막에 누군가가 적어둔 메모가 보입니다.
 
박성태:(방안을 마지막으로 봅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 방 안에서 어째서인지 바다내음이 납니다.
 
바다에 이웃한 곳이라서 냄새가 배어버린 걸까요?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익숙하고 기억에 남는 향기입니다.
 
이곳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여자가 돌보았던... 이 방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문득 방을 돌아보니 바닥에 흔한 것처럼 진주가 굴러다니네요.
 
진주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재력 +5)
 
둘러볼 곳을 모두 둘러본 이후,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 청명을 만나러 바스락거리는 모래사장을 지나,
 
절벽 아래의 약속 장소에 도달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분명 오늘 밤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청명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네요.
 
… 여전히 마음이 상한 그대로인 걸까요?
 
역시 수년의 공백은 한순간에 돌려놓을 수가 없구나, 생각하며 망설이던 순간,
 
첨벙-
 
차가운 바닷물이 조금 튀기면서 사람의 형상…….
 
청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청명:늦었네.
 
박성태:뭐.. 좀 둘러보고 오느라. 많이 기다렸어?
 
예청명:뭐, 그랬지. (마른 자갈 하나를 내밀며 성태에게 보여줍니다. 만년필의 뾰족한 심으로 긁어낸 것인지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쓰는 게 맞아?
 
박성태:내 생각보다 엄청 잘 쓰고 있네.. 좋아할 줄 알았어. 음 뭐. 그런 용도는 아니지만, 비슷하게는 썼네. 그래, 육지에는 종이라는게 있거든. 거기에 이걸 쓰는건데.. 다음에 종이도 가져올게. 선물로 가져도 돼?
 
예청명:그렇게 해. 그리고 종이는 나도 알아. 써본 적이 몇 번 있거든. (청명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좀 더 얕은 물가로 나오며 말을 이어갑니다.) ... 준비는 잘 되어 가? 날 육지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지.
 
박성태:언제? 여기서 썼으면 분명 물에 다 젖었을텐데.. 아. 응, 그럭저럭.. 쉽지가 않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데려가고 그럼 얼마나 좋아. (네 근처 바위에 앉아서 물을 살짝 튀겨준다) 청명아, 넌 나 없을때 뭐하고 있어?
 
예청명:그물도 끊으러 가고, 바다에서 인간 물건들을 찾아 줍기도 하고. 그마저도 질려서 못하겠어, 예전엔 좀 더 할 게 많았는데... 너는 어때. 여전히 글을 쓰고 있어?
 
박성태:아.. (그래서 어부가 본거구나.) 청명이 넌 인간들 물건 중에 뭐가 제일 좋아? ..너한테 노래도 들려주고싶다. 그건 동그란 걸 얹어두면 알아서 소리가 나거든. 나? 응. 나야 뭐, 늘 바쁘지. 글쓰고.. 널 데리고 올 여러 준비들?
 
예청명:노래가 들리는 동그란 것? 나중에 육지로 가면 보여 줘. 그건 신기하게 들린다. (청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옅게 웃으며 말을 덧붙입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바다에 뛰어드는 일은 관뒀나 봐. 그때 널 찾겠다고 사람들이 바다에 쫙 깔렸었는데.
 
박성태:그 때는.. 그러게. 다시 한번 더 그런 때가 오면 날 구해줄거야?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같이 마주보고 웃지도 못했을거야, 청명아. 그 때 생각하면.. 널 위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물론 너한테 말도 안하고 가버린건.. 미안해.
 
예청명:... 내키면. (눈을 느리게 끔뻑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합니다.) 그렇게 말하니 나쁘진 않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있잖아. ...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만나야 해. 알았지? 넌 내가 크고 나서 처음으로 사귄 인간이거든. 허튼 생각 품지도 말고.
 
박성태:..그 대답은 섭섭한데, (뚱하게 입을 비죽거리다가) 계속 만날거야. 너 만나러 꼬박 오고.. 적어도 네 옆을 떠나진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래.. 네 말인데 내가 어길리가 없잖아. 불안하면 내기라도 할래?
 
예청명:어길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그래, 넌 뭘 걸 거야? 나한테 그다지 걸 만한 것들은 없지만, 네가 말하는 걸 들어보고 생각해볼게.
 
박성태:뭘 걸거냐고? ...내 모든 재산? 권력? ... 넌 관심없겠다. 가지고 싶은거 없어? 예를 들면 보석이라던가. 음악이 나오는 상자라거나.. 나라거나..
 
예청명:... 그중엔 널 받아내는 게 가장 낫겠다. (청명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네가 날 떠나고 나면 소용없는 거 아냐? 뭐 그럴 일이 없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
 
..
 
.
 
덜컹-
 
열차의 기적 소리와 함께 당신은 도로 깨어나 눈꺼풀을 들어올립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도 잠시, 어깨 위로 아이를 어르듯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그 안락한 손길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날 잠을 많이 못 잔 탓일까요…?
 
나른한 감각이 온몸에 퍼져나가며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
 
..
 
...
 
저택, 당신의 방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내 보니. 정겨운 천장이 당신을 반기고 있습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당신은 바다에서 청명을 보지 않았던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정신력 판정
 
박성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기억났습니다.
 
어제 청명을 유리 수조에 담아 궤짝 안에 숨겨 데려왔었죠.
 
그 말은 청명을 어쨌거나 바다에서 구해왔다는 뜻이겠군요.
 
다시금 고민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게 맞는 걸까요?
 
여전히 정답은 떠오르지 않지만 이것이 최선이라는 믿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청명의 상태를 파악하러 가는 것이 좋겠어요.
 
당신은 대충 겉옷을 걸치고는 인어 전시관으로 발을 옮깁니다.
 
<개장 전 인어 전시관>
 
당신은 급하게 달려온 다음 천천히 숨을 고르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섭니다.
 
전시관은 전에 봤던 모습과는 다름이 없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게 보이네요.
 
예청명:안녕. 좋은 아침이야.
 
물에 흩어진 실크 같은 지느러미로 수조 안을 헤엄을 치고 있다가 당신을 발견했는지.
 
청명은 수조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아침 인사를 건네옵니다.
 
예청명:지낼 만하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하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나 봐. 오늘은 어딜 구경시켜 줄 거야?
 
청명은 성태의 손을 그러잡고는,
 
어디를 데려다줄 거냐며 연신 당신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어부는 인어에게 육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라며 귀띔했었죠.
 
청명에게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지만 당장 멀리까지 나갈 수는 없습니다.
 
당장 어디에 가는 게 좋을까요…?
 
지능 판정
 
박성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러고 보니 청명에게 진짜 꽃을 보여주는 게 좋겠습니다.
 
마침 저택 바로 뒤에 정원이 꾸며져 있으니,
 
바퀴 달린 수조에 청명을 담아 옮기면 사람들의 눈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원으로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저택에 들어오기 전 준비해두었던 바퀴가 달린 간이 수조로 청명을 조심스럽게 옮겼고,
 
천천히 수조를 밀면서 저택 뒤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저택 뒤 정원>
 
저택 뒤에 있는 정원에는 여러 꽃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정원에서 키우는 장미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어렵게 들여온 튤립까지, 웬만한 꽃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신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인어에게는 그리 익숙한 풍경이 아니겠죠.
 
박성태:청명아, 그 .. 내가 가꾸는건 아니지만 정원이 근사하거든. 네가 원하는 꽃이 있어? 꺾어서 수조 안에 넣어주게.
 
예청명:내 눈엔 다 비슷하게 보이는데. (난감하다는 듯 수조 밖으로 얼굴을 뺐다가, 이내 손가락을 뻗어 수수한 들꽃 몇 송이를 가리킵니다.) ... 저걸로 해 줘. 난 저런 게 마음에 들더라. (어딘가 음울한 기색이 스쳐갑니다.)
 
박성태:저게 마음에 들어? (청명이 손 끝이 닿는 곳으로 가 꽃을 뽑더니 흙을 탈탈 털어 청명에게 쥐어줍니다.) 화려한 꽃이 많은데 저 꽃이 좋았어? 여기가 생각했던것보다 별로라 그래? (청명의 낯을 살펴봅니다.)
 
예청명:그냥. 바닷가에서도 종종 보이던 것 같고 해서. 가까이 보이는데 못 꺾는 게... (청명이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조금 아쉬웠거든. (그동안 고개를 돌려 가까이 보이는 장미 줄기를 꺾습니다. 성태의 귀에 재빠르게 꽂아버려요.)
 
박성태:아.. 미안. 수조를 근처에 둬서 네가 직접꺾는게 나았으려나? 나처럼 같이 걸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너랑 해보고 싶은게 많거든. (귀에 장미꽃이 꽂힌걸 벙찐표정으로 보더니 웃음을 터뜨리면서 청명의 머리를 쓸어줍니다.) 어때? 어울리는것같아? 장미는 내가 고집부리기도 했어. 그냥.. 이쁘잖아. 배고프지 않아? 더 둘러볼래?
 
예청명:아냐, 이거면 됐어. 나도 다리가 있었으면 나았을까. (긴 숨을 내쉬며 성태를 마주봅니다.) 예쁘긴 한데... (... 그러곤 손가락을 내려다 봐요. 따끔한 감각이 뒤늦게 찾아오더니 청명이 인상을 찡그립니다. 가시에 찔린 것 같습니다.) 이건 뭐야?
 
박성태:물론, 없어도 이뻐. 널 탓하는게 아니라.. 그냥 한번 나혼자 멋대로 상상해본거야. (네 손목을 잡아 확인하더니 손톱을 세워 가시를 어렵게 빼내봅니다.. 청명이를 보고 눈썹이 축 쳐지더니) 많이 아프지, 얘네는 줄기에 뾰족한게 달려있는거야. 화려하지만 함부로 욕심내면.. 피를 본다 뭐 이런건가.. (농담처럼 툭 뱉다가 슬 웃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약이라도 발라줄게. 그거 바르면 점점 아물거야.
 
예청명:(얌전히 성태에게 손을 내밀고서 성태와 제 손을 번갈아 봅니다.) ... 끝나면 좀 쉬다 가자. 이것 저것 많이 봤더니 갑자기 피곤해졌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더니 긴 한숨을 내쉬어요.)
 
정원은 어찌나 넓은지 곳곳에 투명한 연못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사이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청명을 보려고 하는지 얼굴을 빼꼼 내밀어보기도 하네요.
 
그리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편 그늘진 곳에는 티파티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보이네요.
 
저기라면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성태:차나 좀 마셔볼래? 음.. 그때 말했던 소리 나오는 상자도 있고 따뜻한거 마시면 기분이 나아질거야.
 
고소한 냄새를 솔솔 풍기며 입맛을 자극하는 쿠키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양과자,
 
집에서는 쉽게 마시기 힘들다는 커피까지,
 
여러분이 오기 전 하인들이 준비한 듯 보입니다.
 
예청명:(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를 손으로 콕 찔렀다가 물컹한 감각에 인상을 찡그립니다.) 이건 또 뭐야... 먹는 거야? 너희는 이런 걸 먹고 살아? (조금,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성태를 바라봅니다...)
 
박성태:에이, 먹어보면 너 엄청 좋아할걸. 너 좋아하는거 기대하고 산건데, 그렇게 보였어? 생긴건 나름 이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포크로 한 입떠서 내밀어줍니다. 조금.. 시무룩해져버렸어요)
 
예청명:(불신이 가득한 시선으로 성태가 내민 케이크 조각을 바라보다 입을 벌립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조각만 베어물었다가, 이내 입을 크게 벌려 한 조각을 통째로 입에 넣습니다.) ... 달아. (그렇지만 아주 싫지는 않은 얼굴로 케이크를 우물거립니다.) 그것도 줘. 새까만 물.
 
박성태:그치, 맛있지. 응? 응?? (긍정적인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 이거 말한거야? (각설탕을 넣다 말고 조심스럽게 후 불어 건네준다)
 
예청명:먹을 만해... (성태의 유난을 보며 이상하단 듯 턱을 당깁니다. 이후 커피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셔봐요.) ... 이게 낫다. 저걸 먹고 이걸 마시니까 훨 나아. 한입 더 줘. 같이 먹어보려고.
 
박성태:맞아, 사람들이 달다가 물리면 이걸 마시거든. ..육지 음식 마음에 들어? 사실 이건 밥을 먹고 그 뒤에 먹는 후식같은거고. 바다로 예를들면.. 생선을 먹고 조개를 먹는 느낌..? 여튼 그런거. (한 입 크기로 떠서 내밀고 있으며..)
 
예청명:난 생선 잘 안 먹어... (다시 떨떠름한 시선으로 당신을 보았다가 이내 입을 비죽여 웃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성태를 놀린 게 분명해요..) 아무튼, 글쎄... 생각보단 괜찮은 거 같아. 고마워. 약속 지켰네.
 
박성태:그럼.. 뭘먹어? (당황한듯 턱을 당기다가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고..) 아니잖아,.. 바다에 그거 말고 먹을게 없는데?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하다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아냐, 너랑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것도 좋은데. 돌아갈래? 나도 옆에 있을게.
 
예청명:(성태의 어리둥절한 태도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곤 눈가를 문질러 닦습니다.) 다 먹고 가자. 거의 다 끝나 가.
 
분명 청명과 정원에서 놀며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이전에 바다에서 있었을 때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하늘은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왜 이렇게도 야속하기만 할까요.
 
밥도 거르고 오랫동안 밖에 있던 탓인지 약간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이만 돌아가야 할까요?
 
저택으로 돌아오니 붉은색의 하늘은 이미 어둡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이 하늘을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바닷가에서 봤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당신은 청명을 다시 인어 전시관으로 바래다줍니다.
 
아무래도 좁은 간이 수조에 있었던 탓인가요…?
 
갑갑했었는지 전시관의 수조로 돌아오니 힘차게 꼬리를 치며 헤엄치더니,
 
다시 수조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예청명:잠깐만. 가기 전에 가까이 와 봐.
 
박성태:왜? (허리를 숙여 청명에게 다가갑니다)
 
예청명:머리에 먼지가 붙어 있어서. 잠깐만,
 
청명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청명은 팔을 뻗어 당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더니,
 
쪽-
 
뺨에 무언가 말캉한 게 닿았다가 떨어집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얼떨떨함을 느끼지만,
 
인어는 한 손에 꽃잎을 쥔 채,
 
내일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수조 안으로 모습을 감춥니다.
 
지능 판정
 
박성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그러고 보니 이 쓰다듬는 손길,
 
어디서 많이 느껴본 것 같은데...
 
무언가 생각날 듯하지만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분 탓인가요..?
 
아무래도 시간이 늦었으니 방으로 가서 잠을 자야겠어요.
 
...
 
..
 
.
 
누군가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락한 손길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거운 눈꺼풀 탓인지,
 
나른한 감각이 당신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이 가려지자 곧 시야가 더욱 어두워지며
 
다시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
 
..
 
...
 
흐릿한 시야로 눈을 떠보니 당신은 책상 위에 엎어져서 잠을 청했던 것 같습니다.
 
피곤했던 탓인지 유난히 잘 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은 밤에 지배당한 것처럼 어둡기만 하네요.
 
정신력 판정
 
박성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분명 아까만 해도 정원에서 놀았던 것 같은데...
 
날짜를 확인해보니 오늘은 인어와 지낸 지 일주일이 되는 날입니다.
 
일주일 동안 청명과 같이 저택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서재에서 책을 펼쳐두고 모험이나 여행 같은 어린애들이 할 만한 토론을 펼치는 등등.
 
당신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바쁜 나날을 살아왔지만,
 
요 일주일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와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것도 오늘까지입니다.
 
내일 인어 전시관이 개장한다면 저택에는 다시 사람들이 붐빌 것이고,
 
만일을 대비해 당신은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자리를 지켜야 할 겁니다.
 
모리나 사이토 같은 장사치들은 금방 찾아와 인어의 값을 흥정하려 들겠죠.
 
스미다 가문의 사람들 역시 전시관을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며 자신의 위세를 떨치려 애쓸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당신은 위선과 당위의 경계를 고민하며 모든 추악한 일들을 견뎌내야 하겠지요.
 
하지만…….
 
아직 오늘이 지나지 않았잖아요.
 
아직까지는 청명을 찾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믐달이 보이는 인어 전시관>
 
곧 개장을 눈앞에 둔 인어 전시관입니다.
 
내일을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던 팻말도 채워졌네요.
 
팻말을 살펴볼까요?
 
박성태:(들여다봅니다)
 
팻말에는 인어 전시관을 위한 주의사항이 적혀있습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자 문소리를 들었는지 청명이 수조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초승달에 반사되어 비치는 청명의 얼굴이 오늘따라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걸까요…?
 
박성태:오늘 기분이 안좋아? .. 기운 없어보이네.
 
청명은 망설이다 심란한 얼굴로 대꾸합니다.
 
예청명:일주일이나 여기에 있었어. 즐겁긴 했는데... 물도 답답하고, 잠시 바다에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박성태:바다에 간다고? 물은.. 원하는대로 갈아줄게, 답답해서 그래? 아니면.. 나랑 노는게 재미없었어..?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신을 바라보며 바다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만,
 
당신은 청명을 바다로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당연하죠.
 
지금 청명을 돌려보낸다면
 
바닷물을 말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어를 찾아내려는 무리들이 청명을 대번에 노릴 겁니다.
 
제아무리 간절한 부탁이라도 당신은 청명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예청명:그냥, 햇빛도 안 보이고 숨쉬기도 답답하고 그러니까. 헤엄칠 공간도 좁잖아. 너랑 지내는 건 괜찮았지만... (청명이 한참 인상을 찡그리며 성태를 응시합니다.)
 
박성태:그게.. 너한텐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 있어. 나말고도 바다 주변에 돌아보는 사람들, 있었잖아. 그 사람들한테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그래서, 널 보호하려고 여기 데려온거야. 널 봤다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내가 아닌 사람들이 널 데려갔다고 하면 난... 참을 수 없어 청명아.
 
그 말에 청명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을 합니다.
 
예청명:그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겠네.
 
...
 
..
 
.
 
덜컹-
 
어김없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잠을 깨웁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괜찮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다시 나른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
 
..
 
...
 
스미다 에이코:깨셨나요?
 
낯선 목소리에 흐릿해진 정신을 뒤로하니,
 
시야에는 흑단같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올려 모자를 쓴 에이코의 모습이 보입니다.
 
점점 눈가가 선명해지면서 익숙한 마차 안이 보이고,
 
그것과 다르게 익숙하지 않은 흑빛의 눈동자가 보이는군요.
 
도대체 이자는 누구기에 당신의 마차에 함께 탑승하고 있는 거죠?
 
정신력 판정
 
박성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꺼풀을 한번 감았다가 떠보니…….
 
지금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는 사람은 당신의 정혼자,
 
에이코잖아요.
 
정말 미친 게 아닐까요?
 
아무리 사이에 사랑이 없다지만 자신의 정혼자를 잊을 수가 있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 따라 기억이 흐릿한 것이,
 
마치 바다 위로 올라오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네요.
 
5시의 인어 전시관
 
마차에서 내려 북적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곳에는 오늘 개장한 인어 전시관이 보입니다.
 
수많은 인파는 이 기나긴 줄을 기다리며 다리가 아프다는 둥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불평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옆으로 퇴장하는 사람들의 한껏 놀란 표정과,
 
들뜬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며 극찬을 떠벌리며 나오는 모습에
 
모두가 줄을 이탈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무렵,
 
곧 인어 전시관을 닫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잠시 후 폐관을 알리는 5시 정각의 종소리가 울리자,
 
수많은 인파는 인어 전시관에서 썰물이 지는 듯 사라져갑니다.
 
물론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듯 들어가지 못해 아쉽다는 음성과,
 
마지막을 즐기고 나온 음성이 뒤섞인 채...
 
마치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한적해진 이후,
 
한적해진 공간에 당신과 에이코, 둘만이 남습니다.
 
스미다 에이코:개장 첫날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렸네요. 당신은 이미 인어를 보셨겠죠? 기대되네요.
 
박성태:아.. 맞아요. 당신은 아직 보지 못했죠? 제가 본 생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당신이 좋게 봐주었음 합니다.
 
스미다 에이코:그럴게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어 고마워요.
 
정적을 가로지르는 듯,
 
에이코는 어느덧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박성태:(에이코가 웃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그 웃음은 당신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이익을 계산하는 자본적인 웃음이로군요.
 
에이코가 당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긴장감에 목이 타는 것도 같습니다.
 
그나저나 청명이었다면,
 
이런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이윽고 에이코와 함께 폐점된 인어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아까만 해도 여러 사람이 북적이던 전시관에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스미다 에이코: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하시다니. 수완이 뛰어나시네요. 아름다워라.
 
에이코는 신기하다는 듯 전시관의 액자나 소품을 슬쩍 가볍게 둘러보고는,
 
대한 수조를 가리키며 데려가 달라고 말합니다.
 
수조는 창밖의 붉은 노을을 머금은 듯 불그스레한 빛을 띠고 있습니다.
 
청명은 금방 당신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뜹니다.
 
그리고 수조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여느 때처럼 인사하네요.
 
예청명:또 늦었어. 종일 모르는 사람들만 지나가고.
 
박성태:미안, 누굴 데리고 오느라. ..널 보고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많이 기다렸어? 오늘은 늦게까지 있어줄게. 괜찮지?
 
예청명:그렇게 해. (지친 듯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네 친구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밀려오던지. 웬만해선 상대도 안했을 텐데 어쩔 수 없었어. (짜증스레 얼굴을 닦아냅니다.)
 
박성태:나중에 정원에서 차 한잔 할까? 아, 아니다. 꽤 유명한 음식점에서 네걸 따로 포장해달라했거든. 입에 맞을진 잘 모르겠다. 하하,.. 고생했어 청명아. 다들 너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어? 지쳐보이네. 오늘은 푹 쉬자.
 
예청명:그래, 그렇게 하자. 하여간 인간들은... (일부러 심술을 부리려는 듯 성태에게 물을 튀기고는 수조의 가장자리에 턱을 걸칩니다.) 나중에, 저번에 같이 있었던 곳에 가자. 거기서 둘이서만 쉬는 걸로 해. (힐끔거리며 에이코를 보더니,)
... 그런데 저건 뭐야?
 
박성태:저번에 그 곳 좋았지? 더 근사하게 꾸며두라고 부탁할게. 저거? (에이코를 힐끔보다가 멋쩍은듯 웃음을 터뜨린다.) 아, 아.. 친구. 좀 친한..친구.
 
당신이 에이코를 친구라고 소개하자.
 
의아한 얼굴로 에이코가 대화에 끼어듭니다.
 
스미다 에이코:장난도 심하셔라.
 
에이코는 청명에게 다가서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말을 이어갑니다.
 
스미다 에이코:저는 스미다 에이코라고 합니다. 박성태님과는 정약을 약속한 사이이니, 친구보다는 정혼자에 가깝겠죠.
인어님이야 말로 성태 씨의 좋은 친구시라고요.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내보이며 에이코는 수조 쪽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 전시관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감돕니다.
 
성태에게 투덜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미미하게나마 미소짓고 있던 청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며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혼란스러운지,
 
청명은 당신과 라비를 번갈아 보고는 점점 얼굴을 일그러뜨립니다.
 
... 아니, 에이코요.
 
청명과 오랫동안 붙어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예청명:당장 여기서 나가, 나가버려! 배신자!
 
무엇이 그리도 청명을 화나게 하는지,
 
청명은 윽박지르며 지느러미로 수면을 세게 내리칩니다.
 
그것도 모자라 불만을 토해내듯 에이코를 향해 수조의 물을 내뿌리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일주일 동안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예상 밖의 일입니다. SANc (0/1)
 
박성태: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청명아, 네가 왜 화났는지 알아. 어? ...그만, 참자. 설명할게. (에이코 어깨를 붙잡고 앞을 막아서더니 물을 대신 맞습니다.) ..음식, 식을거야. 식으면 맛없어지니까.. 데려다 드리고 금방올게. 응?
 
예청명:내 앞에서 꺼져! 넌 몇 번이고 날 실망시켰어, 분명히 날 지키겠다면서 여기에 가뒀잖아. 그래놓고 혼인할 상대를 내 앞에 데려와? 도대체 몇 번이나 날 실망시킬 거야, 몇 번이나! (악을 쓰며 성태에게까지 물을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순간 멈춰버리더니, 갑자기 에이코를 바라보며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립니다.)
 
에이코가 갑작스레 숨을 몰아쉬더니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일단 에이코를 청명으로부터 떼어놓는 게 좋겠습니다.
 
박성태:에이코, 에이코씨! 괜찮으세요? (에이코를 안아들고는 급히 달려나갑니다.) 청명아. 나중에.. 나중에 봐.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것같아. 너도 진정 좀 하고 있어. (문을 쾅 소리나게 닫으며 사용인들을 급하게 찾아요.)
 
청명의 분노는 사그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어쩔 수 없이 에이코의 손을 잡은 채 인어 전시관을 나가자,
 
소란스러웠던 청명은 행동을 멈추고 다시 수조 안으로 몸을 감춥니다.
 
에이코 역시 천천히 안정을 되찾고 있네요.
 
문이 모두 닫히기 전, 청명과 잠시 눈이 마주칩니다.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뒤를 돌아보자,
 
잠깐 당신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잃은 듯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명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뒤를 돌아 수조를 유유히 헤엄칩니다.
 
당신은 에이코를 데리고 밖으로 나옵니다.
 
위압감을 풍기던 에이코는 정신없던 상황 때문인지 머리까지 헝클어져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어를 구경하러 온 손님이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너무나 미안하지만….
 
….
 
청명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스미다 에이코:지금 제 꼴이 말이 아니네요.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겠어요.
 
박성태:..미안합니다 에이코씨. 제가 잘 타일러두겠습니다. 이번 일은 제 잘못이 큽니다. 앞까지 바래다 드릴테니 살펴 들어가세요. ..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스미다 에이코:이 정도는 괜찮아요.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상황에서 만나길 바라요. 이만 가볼게요, 걱정 마세요.
 
에이코는 화를 내는 기색도 없이 당신을 향해 웃어주고는,
 
마차에 올라타기 전 당신의 손을 끌어 잡고 웃어줍니다.
 
스미다 에이코:다음을 기약할게요. 성태 씨.
 
에이코는 마차를 탄 후 당신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인어 전시관에 도착했을 때와 달리 하늘 위로 휘몰아치던 붉은 노을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점차 진청색의 땅거미가 온 세상을 덮어 가립니다.
 
노을처럼 한순간 왔다 간 당신의 정혼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답고, 상냥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도대체 청명은 왜 정혼자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설마 당신을 사랑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찜찜한 마음에 당신은 어두워진 인어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6시의 인어 전시관
 
전시관 안에는 아까의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사방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고여있습니다.
 
듣기 판정
 
박성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수조 근처에서 찰박이는 소리와 함께 얕게, 떨리는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분명히 그 소리는...
 
천천히 수조로 다가 가보니,
 
얼굴을 비추던 청명은 보이지 않고 수조 저 깊은 곳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수조 바닥에는 존재를 뽐내는 새하얀 진주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언제 저런 것들을 내버려 뒀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요즘 따라 기억이 오락가락하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청명을 부르기 위해 가볍게 유리로 되어있는 수조를 툭툭 두드려보니.
 
평소 같으면 당신의 부름에 빠르게 대꾸하던 청명이,
 
유난히 예민한 기색을 띤 채로 수조 앞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웃는 낯은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은 없었는데.
 
아직도 어두운 얼굴은 저 밖의 밤하늘처럼 초연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살결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얼굴선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똑, 하고 물이 떨어짐과 동시에 청명이 굳은 얼굴로 말합니다.
 
예청명:혼자 있고 싶어. 가.
 
대답할 틈도 없이 인어는 저 깊은 수조 안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
 
..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흘….
 
수많은 나날이 흘러갑니다.
 
당신의 인어 전시관은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아 올라,
 
경성에서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는 지주며 대신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청명을 보러 몰려왔습니다.
 
바다에서도 극히 일부만 봤다고 전해지는 생물이 진짜로 존재하고,
 
그것을 자신의 눈에 담을 수도 있다니.
 
누가 이 기이하고 신비로운 생명체를 마다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인어를 봤다는 사실을 자랑이라도 되는 마냥 여러 사람에게 떠벌립니다.
 
혼마쯔,
 
미쓰비시,
 
심지어는 종로에 이르기까지.
 
귀족,
 
인력거꾼,
 
선교사, 장교,
 
보험회사 직원,
 
시인, 그리고 학생을 막론하고...
 
하지만 인기가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소문이 있는 법.
 
시간이 지날수록 인어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들은 것과 다르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만도 많지만 어쩌겠습니까.
 
이토록 신비한 생물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손님들은 이곳을 방문하게 되겠죠.
 
그래요.
 
당신은 전시관을 통해 청명을 일본인 수집가들의 마수에서 보호하면서,
 
동시에 의심을 피하고,
 
수많은 관람료를 거둬들여,
 
오늘도 싸우고 있는 동료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단 하나 걱정되는 것은 청명의 건강입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져 가고 활기를 잃어가는 청명,
 
분명 당신은 어부가 당부한 대로 청명을 도와주지 않았나요.
 
무엇이 도대체 청명을 이렇게까지 만든 걸까요…?
 
당신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청명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청명은 눈 하나 꿈쩍 않습니다.
 
건드리면 툭 하고 끊어질 것 같은 실타래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청명은 다시 처음 만난 순간처럼 경계심을 드러내며 당신을 노려봅니다.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들을 손으로 잡으려 애쓰지만,
 
그것들은 모두 손가락 사이를 스쳐 빠져나가고 맙니다.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밤마다 당신은 불안감에 인어의 곁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듣기 판정
 
박성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예청명:... 싶어.
 
청명이 오랜만에 당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뭐라고 말했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청명은 수조 밖으로 팔을 내어 당신과 손을 잡을......
 
.
 
..
 
...
 
보름달이 보이는 인어 전시관
 
덜컹-
 
아니, 왜 마차에 있죠…?
 
분명 방금까지 청명과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작스럽게 마차에서 눈을 뜬 성태는,
 
SANc (0/1)
 
박성태: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그런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 중인 거죠…?
 
정신력 판정
 
박성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옆자리에서 낯익은 머리카락이 아른거립니다.
 
아, 맞아요.
 
오늘은 당신의 결혼식 전날.
 
내일 있을 결혼식을 위해 에이코를 데리고 당신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걸 까먹다니 잠이 덜 깬 모양이에요.
 
정신을 차리니 마차는 이미 당신의 저택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아까 그 덜컹거림은 정차를 위한 것인 걸 깨닫습니다.
 
지금 시각은 밤입니다.
 
에이코는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는지 먼저 손님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이코가 들어가기 전 같이 담소를 나누지 않겠냐는 형식적인 청을 해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박성태:..아닙니다. 그.., 결혼식 전이라 긴장이 풀렸는지 저도 잠이 쏟아져서.. 내일 일어나면 당신에게 바로 갈테니 서둘지 말죠. 저희 앞으로.., 지내야할 날이 많지 않습니까.
 
스미다 에이코:그렇죠. 그렇네요. (에이코가 슬며시 웃더니 방문을 조심스레 밀어 엽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주무세요.
 
아무래도 최근 상태가 좋지 않은 청명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역시 인어 전시관을 들렀다 가는 게 좋겠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당신의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이 밀려들어옵니다.
 
고작 몇 시간 뒤면 혼인을 맞이하게 되겠죠.
 
정체를 숨기고 대의를 수행하기 위해 진행하는 혼인일 뿐이지만,
 
긴장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복잡함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위태로운 청명과 피로로 인하여 사라지는 기억들,
 
창해로부터 점차 서늘해지며 몰려드는 바닷바람,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악수일지 분간할 수 없는 혼란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인어, 청명.
 
어느덧 걸음이 향한 곳은 익숙한 문입니다.
 
인어 전시관으로 들어갈까요?
 
박성태:(들어가봅니다)
 
예청명:어서 와. 기다렸어.
 
열리는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전시관 안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저 수조의 찰박이는 물소리와,
 
청명의 인삿말만이 당신을 반겨주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청명이 당신에게 인사를 한 것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고,
 
침잠해가는 심해를 닮은 입매로 모든 것에 침묵하기만 했어요.
 
당신의 지극정성이 통한 걸까요…?
 
아니면 당신의 복잡한 심경을 알고 심란한 마음을 덜어주려고 하는 걸까요.
 
천천히 수조로 다가가니 역시 바다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사뭇 수척해진 모습이 눈에 띕니다.
 
박성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바다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던 청명을 포획해서 당신만의 방식으로 보호한 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조선의 바다를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청명을 붙잡은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요.
 
당신의 나라,
 
당신의 동료,
 
당신의 가족,
 
그리고 당신의...
 
당신은 청명을 보호하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청명을 사랑하는 당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 이미 반쯤 수조에서 몸을 내빼어,
 
당신의 손을 잡은 청명이 말을 꺼냅니다.
 
예청명:축하해. ... 내일이라면서.
 
관찰력 판정
 
박성태: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누구에게 들었는지,
 
자신의 결혼을 축하해오는 청명의 시선은 애써 따스합니다.
 
하지만 맞잡은 손을 타고 부들거리는 떨림이 느껴지네요.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걸까요.
 
예청명:할 말이 있어.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역시 지금 말하지 못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청명이 성태를 외면하듯 고개를 비틉니다.)
... 사랑해. 물론 인어가 인간을 사랑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런 내가 두려워?
 
박성태:날 보고 한번만 더 말해줘. ... 널 상처입히고 몇번이고 실망시켰는데? 날 사랑한다고..(허탈한듯 웃음을 터뜨린다.) 네가 날 평생 증오할까봐.. 두려웠어. 날 사랑한다는데 두렵냐고? 아니. ..아니, 청명아. 당장이라도 널 데리고 바다로 돌아가고싶어. 내가 어리석었어. 너한테.. 하면 안될 짓을 했어.
 
예청명:(천천히 성태에게 시선을 돌리고서 청명이 입술을 깨뭅니다.) 네가 날 어떤 이유로 여기에 데려왔는지 알아. 내가 잡히지 않길 바라서도 있겠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겠지. 다 알고는 있었어, 그래도... (복잡한 듯 얼굴을 쓸어내린 청명이 힘겹게 물어옵니다.)
... 너도 나를 사랑하지?
 
박성태:..사랑해. 네가 어떤 존재로 나타나도 다시 널 사랑할거야. (주머니에 있는 반지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다 울음을 터뜨립니다.) 잘못했어 청명아. ...사랑한다고 말해줄래? ..마지막으로,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반지 케이스를 천천히 열더니 청명을 바라봅니다.) 난 왜 너만 보면, 항상 미안한 행동만 하는걸까. 네거야. 사람들이 왼속 약지에 왜 반지를 끼는지 알아? 사랑의 맹세래...
 
예청명:... 사랑해. 계속, 수년간 널 그리워했어. 보고 싶었어... (왼손을 뻗어 성태의 얼굴을 쓸어줍니다. 이내 손의 떨림을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내밀어요.) 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잖아. 네가 끼워줘야지. (어쩐지 물먹은 목소리입니다.)
 
박성태:날 많이 그리워했는데.. 보고싶어했는데, 가둬버렸네. 많이 야위었어 청명아. 네가 걱정되서 잠이 오질않아. ..괜찮은거지? 내가 너라는 수조에 갇혀버린게 아닐까.., (왼속 약지에 반지를 조심스레 끼워주고 청명의 앞머리를 쓸어올려줍니다.) 모르겠어. 인어를 어떻게 다뤄야한다느니. 그런 쪽지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일 오래 봤는데.. 누구보다 내가 널 더 잘 알고 너도 감정이 있는데 왜 그 쪽지를 믿고싶었을까..
 
한참이나 당신의 대답을 듣고 있던 청명은 여전히 잡고 있던 손을 억세게 끌어당깁니다.
 
예청명:... 너한테 가혹할지도 모르지만 들어줬으면 하는 소원이 있어. (이 말을 하기 위해 이토록 불안해하던 걸까요. 성태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청명이 이내 고개를 푹 수그리며 말합니다.) 수조 바깥으로 지나쳐간 사람들을 보면서 알 수 있었어. 넌 여전히 바다에 뛰어들던 그 순간과 같아. 위험하고 무모하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데도 계속 그렇게 버티면서.
... 네가 나를 여기에 두고 하던 일들을 알아. 나도 너를 지키고 싶어. 네게 입맞추게 해 줘.
 
네가 위험하게 살지 않으면 좋겠어.
 
이 선택이 이기적일지라도.
 
네가 다시는, ...
 
박성태:널 위해 살아가는건데, 내가..널 잊어야하면. 나는 어떡해? 나는 이제 뭐 때문에 살고 웃어야하는거야..., 청명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해? 넌 여전히 눈부시고 아름다워. 하지만.. 나는 너랑 달라. 너랑은.. 다르게 남을 이용하려하고 교활해. 내가 널 지키겠다고 했나? 아니, 난.. 나조차도 못지켜. 결국 너까지 화나게 만들었잖아. 내일 결혼식이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랑 결혼하면서 이 가문을 유지해 가는 것. 그게.. 그냥 내 삶의 전부여야할까? 너마저 잊으면,.. 난 안돼. 청명아. 너는 날 잊더라도, 나는 널 잊어선 안되는거잖아.
 
예청명:네 기억을 지우면 네가 지금까지 얽매여 왔던 것들을 잊게 해줄 수 있어. 그깟 결혼, 가문, 심지어는 나라, 그것까지도...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 네가 그 속에 갇힌 채 괴로워하고 있다는 건 알아. 네 기억을 지우더라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 그것조차 싫은 거야? 내가 곁에 있는데도 정말 그 모든 짐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고 싶어?
 
박성태:..싫어. 너랑 있었던 일들이 괴로운 기억이었더라도 나는 그것조차 소중해. 이 짐은, 내가 충분히 안고 극복해나가야하는거니까. 네가 어떤 사람이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소한 것 조차 까먹기 싫어. 그냥.. 간직해두고싶어. 나비가 되면 어떡해? 너는 그럼.. 내가 널 모르던 그 표정으로 돌아갔을 때 견딜 수 있어? 나는.. 네가 날 외면할때마다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 내가 너라면.. 그런 말 못해. 미워서라도 안해.
 
예청명:나비... (잊고 있었던 이름을 들은 듯 마른침을 삼키곤 청명이 입술을 짓씹습니다.) ... 알았어. 그게 네 선택이라면, 네가 그걸 원한다면...
 
당신은 청명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청명과 당신, 두 사람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지나쳐온 추억을 손가락 사이로 마냥 놓쳐버릴 수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에게는 청명만큼이나 소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세계,
 
급변하는 세상의 톱니에서 무참히 짓밟혀가는,
 
사랑하는 타인들을 위하여.
 
당신은 모두를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 어떤 희생과 두려움조차 잊지 않고서.
 
애달픈 인어와 인간의 이야기.
 
이뤄질 수 없는 한편의 동화.
 
하지만 그 틀을 깨부수는 듯 청명은 수조 밖으로 몸을 내뺍니다.
 
수조 안에서 아름답게 풀어지던 지느러미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곳에는 인간들과 똑같은 다리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성장하듯 청명은 인간으로 우화합니다.
 
그런 기이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총총하게 빛납니다.
 
청명은 우화한지 얼마 안 된 두 다리로 수조 뒤편으로 향하더니,
 
난생 처음 보는 짐들을 챙깁니다.
 
그러고는 다시 당신에게 향해,
 
이제는 따뜻하게 물든 억센 손가락으로 당신을 단단히 붙잡습니다.
 
예청명:그게 네 선택이라면.
사랑하는 나와 이곳을 떠나.
 
그러면 나는 너를 계속 지킬게.
 
손을 꼭 잡은 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자유로워진 청명과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게 된 당신,
 
둘은 결혼식 전날 밤,
 
수면 위로 올라온 거품처럼 홀연하게 사라집니다.
 
...
 
..
 
.
 
덜컹-
 
불쾌한 승차감을 안겨준 열차가 큰 소리를 내며 정차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흐릿한 시야로 당신이 눈을 떠보니,
 
예청명:오래 잠들었더라. 일어나, 내리자.
 
당신과 함께 거품처럼 모습을 감춘 연인,
 
청명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쓰다듬는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청명의 약지 손가락에는 당신이 선물했던 하얀색의 진주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니까...
 
아,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당신과 청명이 상해에 도착해 조촐한 결혼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죠.
 
먼지바람이 이는 역사를 나선 두 사람은,
 
말갛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곤 걸음을 옮깁니다.
 
한걸음,
 
또, 한걸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ND 1. 바다의 상실
 
예청명 생존
 
박성태 생존